▲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영화 <도가니>
'장애인 대규모 집단 수용' 정책으론 문제 해결할 수 없어도가니 사태를 맞아 힘없고, 가녀린 목소리들을 외면하고 일상화된 야만에 눈감던 정치권과 행정당국과 언론들이 약속한 듯 호들갑을 떱니다. 그것은 물론 우리들의 힘이지요. 그것이 여론의 힘입니다. 우리의 목소리가 그 거대한 '침묵의 도가니'에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을 움직이고 우리에게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고 일깨우는 것, 제 주변 활동가들이 10년, 20년 발을 동동 구르며 애써온 일들을 영화 한 편이 해냈으니 제 마음 한편에 자리한 씁쓸함을 어쩌지는 못하지만 참 다행스런 일이지요.
하지만 이번 열풍이 가라앉기 전에 무엇보다 정부의 탈시설화 정책선언을 받아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욕심일까요? 한편으론 이 열풍이 가라앉을 때 즈음 또 다시 2007년 사회복지법인 공공화를 가로 막았던 한나라당과 한기총 등이 지금과 다른 목소리를 내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사회복지법인 투명성 인권 강화 위원회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회복지법인의 투명화, 말이 좋지요, 하지만 그네들에겐 의지가 없습니다. 더욱이 기존 대규모 시설을 해체할 의지는 더더욱 없어 보입니다. 이것은 근거없는 불신이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그네들이 보여준 모습을 그저 잠시 떠올려보기만 해도 됩니다. 그러기에 여러분들의 깨인 의식이 필요하고, 좀 더 넓고, 깊은 시야가 필요합니다.
전현일 선생님이 말씀하시듯, 또 서구 복지국가들의 선례에서 보듯 우리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은 가녀린 아이들에 대한 성폭행 사건에 대한 분노만은 아닙니다. '항거불능'을 엄격히 해석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내린 항소법원에 대한 비판만은 아닙니다. 장애인이 스스로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유, 온전하게 누릴 수 있는 삶, 그리하여 우리와 함께 '장애인'과 '정상인'으로 분리된 삶이 아닌, 그저 한 인간으로서, 그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가 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대규모 시설 수용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합니다. 그 일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면 정부가 강력한 시설화 정책에 대한 규제가 반드시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아쉽게도 복지부는 이 문제를 원점에서 풀 것 같지 않습니다. 보건복지부가 만든다는 사회복지법인 투명성 인권 강화 위원회에 시민단체 및 장애인 인권단체 관계자도 포함된다고 보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온 실질적인 전문가인 단체와 조직, 활동가들은 해당 위원회에서 빠져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시설인권상황에 대한 조사를 또다시 진행하겠다는 것이 복지부의 대응수준이니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미 수차례 조사되고 알려진 내용을 취합하고, 원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정책대안을 모색해야 할 복지부가 7년 이상 이 문제를 제기해 온 사람들에게 위원회 참여조차 제안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 탈시설위원회가 아닌 투명성위원회라는 위원회 명칭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제가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가 제안할 탈시설화의 요구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현실입니다.
탈시설정책위원회는 한 달에 한 번씩 탈시설정책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월례세미나를 개최하는 데, 지난 3월에는 김동호 전 복지부 장애인권익과장이 발제자로 와서 정부의 장애인시설정책에 대해 발제를 했었습니다. 그가 재임기간에 추진되었던 몇몇 시설 개선 정책에 대한 발제 후 토론이 이어졌는데요. 그 와중에 그는 "우리나라에 시설 개혁 정책은 있었지만, 탈시설화정책은 아직까지 없었던 게 맞다"고 시인했습니다. 탈시설정책위원회는 2004년 이후 지금까지 장애 당사자와 가족, 활동가, 실천가, 변호사와 의사 등 전문가, 학자들이 모여 시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연구하고 실천해 온 자발적 시민위원회입니다.
영화 <도가니>가 몰고 온 이 열기가 탈시설화의 물꼬를 트길 간절히 바랍니다. 더불어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대규모 집단 수용 정책은 아무리 안전장치를 만들어도, 법인을 민주화하고 공공화해도, 절대 인권이 보장될 수 없음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덧붙이는 글 | 박숙경씨는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시민교육 전담교수로 장애인권운동을 해왔으며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와 탈시설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서비스 신청권 확대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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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아동성폭력보다 심각한 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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