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이루씨가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하고 있다.
손형안
따이루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가 두문불출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무엇보다 연락을 주고받기가 힘들었다. 그는 버젓이 손전화기를 들고 다니면서 정작 사용을 잘 안 한다. 그와 소통함에 있어 유일하게 반응이 빨리 오는 매체는 '트위터'였다.
인터뷰 당일 따이루씨로부터 송신되는 트위터 멘션과 간헐적으로 연결되는 전화 통화로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행적이 미스터리한 인물인 만큼 첫 인상에 대한 궁금증 역시 컸다.
<오마이뉴스> 기자들은 만남의 장소에 가면 세상 운행원리를 터득한 10대 사칭의 한 도사가 앉아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얼토당토않은 추측은 '설'로 수렴한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난 12일 오후 2시께 영등포구 문래동에 위치한 따이루씨의 사무실, 서글서글한 인상에 앳된 얼굴을 한 소년이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 요즘 어떻게 지내나? "별달리 하는 것은 없고 사무실 '지박령(터에 머물고 있는 귀신을 이르는 말)'으로 산다. 건물 관리인은 우리를 학생이라며 무시한다. 그 관리인과 말다툼하는 게 내가 하는 주 업무다. (웃음)"
따이루씨는 청소년 인권단체 아수나로, 청소년 인권활동가 네트워크, 청소년 활동기반 조성모임 '활기', 청소년자유언론 오답승리의 희망 '오승희' 등 청소년 활동단체들과 함께 영등포구 문래동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다. 공장지대에 위치해 있고 변변한 화장실도 갖춰져 있지 않지만,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이라는 싼 가격에 이만한 공간을 얻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올해 수능을 치르는 1993년생 고3들의 '대학거부 선언'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수능거부 선언자 모집에 100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상적으로 과거 수능거부 운동 동참과 준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한두 명 정도였다. 그러나 현재 준비만 다섯 명이서 한다. 엄청난 일이다. 1993년생의 힘을 믿는다. 고3 당사자들의 수능 불복종 뿐 아니라 자퇴생, 재수생, 예비 교사, 학부모들도 함께 할 수 있는 커다란 판을 기획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부터 활동을 했으면 올해로 벌써 활동 6년차다. 기억에 남는 성과는? "중학교 1학년 당시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과 함께 학생인권 관련 법안을 만들기 위해 청소년들의 서명을 받았다. 당시 다니던 학교의 전교생 300명을 대상으로 서명운동을 벌여 270명 가까이 받았다. 결국 법안은 만들지 못했지만 대신 교육법 개정안에 '학교장과 학교의 설립자는 UN에 보장돼 있는 학생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조항이 들어갔다. 최근에 제정된 학생인권조례 같은 경우도 이 학생인권보장 의무를 기반으로 촉발된 것이다. 나름 뿌듯했다."
- 6년을 활동하면서 청소년 운동진영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나? "청소년 활동가들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과거에는 이런 사무실을 마련할 여력도 생각도 없었다. 그냥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다 서너 명이 오프라인으로 만나 회의하는 형식이었다. 세 명이 모이는 게 기본이고 네 명 모이면 엄청 잘 되는 거고 다섯 명이 모이면 혁명이 날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아수나로를 보더라도 회의를 하면 평균 열 명은 모인다. 아수나로는 전국지부 10개를 운영하며 재정도 나름 탄탄해서 활동가들의 차비 정도는 줄 수 있게 된 것으로 안다. 이렇게 인원이나 재정만 보더라도 청소년 운동이 엄청 성장한 것 같다."
- 청소년 운동이 성장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많이 알려진 것이다. 과거에도 청소년 활동이 없지는 않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냥 '조금 별난 아이들' 정도로 다루어졌다. 그러나 요즘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청소년 활동의 존재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셈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가 진보한 것도 있는 것 같다. 불과 몇 년 전만하더라도 '학생인권'이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더불어 2008년 촛불집회가 큰 영향을 발휘했다. 나도 촛불집회에서 많은 청소년 활동가들을 만났다. 2008년 촛불집회가 청소년 활동을 본격적으로 사회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촛불집회 이후 청소년 활동가들을 파트너로 인정하더라."
- '청소년은 어리다'는 사회적 통념은 어떻게 생각하나? "청소년 운동은 '나이'라는 위계에 대단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걸 당연시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하나의 상하관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사회는 '애들은 아직 미숙하고, (어른은) 우월하고 성숙하다. 애들은 보호 감시 지도 받아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과 의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어른들이랑은 일반적 대화, 소통이나 토론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인권'운동한다고 하면 괜한 시비를 건다. 수업시간에 졸려서 조금 자면 '이게 너희가 말하는 인권이냐'고 트집을 잡는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3들은 함께 대학거부를 했으면 좋겠다. 학교와 사회가 만족스럽지 않다는 것을 본인들도 알지만 '그래도…'라면서 말끝이 흐려지는 것이 일반이다. 그런데 잘못된 것을 안다면 바꾸기 위해서 실천하는 게 당연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현실은 우리가 아닌 이상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민다영씨] "나는 먹고 살려고만 태어난 사람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