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선씨 그림과 남편 윤성운씨의 시
유미선
음험한 네온싸인 히번득일 낙동강변 굽이굽이 이젠 더이상 고향을 찾지 않을게다 종아리 담가가며 첨벙이던 곳 할머니 품속같은 갈대밭 수초그늘나래 가득 가득 계절담아 찾아들던 도래지 은빛 일렁인들 차가운 콩크리트 밑으로 아득히 죽어간다너울너울 생명담아 봄 여름 가을 겨울 숨틔우던 기억잊어
마른사막 흐르듯 관같은 수로되어 반듯 반듯 토막쳐져 흐른다늪으로 들풀로 썩어서 생명빚는 태초로부터의 섭리를 강기슭 산기슭 도려콩크리트 범벅으로 반란을 한다육미터 강기슭육미터 수심밑으로 억겁의 통곡이 검은 울음을 울을게다오래 오래 울게다 콩크리트벽을 타고 끝없이 끝없이 눈물 흘릴게다릴레이 행사는 거창할 필요도 없었고 또 성대하게 할 여유도 없었다. 그들에게는 정치적인 조직체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들이 택할 수 있는 활동은 소박한 1일 1인 4대강 사업 반대 퍼포먼스를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것이었다.
예컨대 명상, 금식, 4대강 사업 관련 글 포스팅, 토론 등등의 활동을 매일마다 새로운 릴레이 주자들에 의해 100일 동안 끊이지 않고 이어가는 식이었다.
석 달 만에 100번째 주자에게 바통 넘긴 4대강 살리기 릴레이 행진지난 2월 16일 김원일씨가 첫 주자로 뛰기 시작한 릴레이는 26일 100번째 주자 김종희씨에게 바통이 넘어간다. 그동안 로스앤젤레스뿐만 아니라 뉴욕의 한인들까지도 릴레이에 참가했다.
한국에 있는 김봉준 화백은 소중한 그림을 보내주기도 했다. 어떤 한 릴레이 주자는 쇼트트랙을 뛰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의 릴레이를 이어가자고 다짐하기도 했다.
체격 좋은 어느 릴레이 주자는 우리 마음 안에 도사리고 있는 MB 심성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를 갖기도 했다. 부산 태생으로 1960년대 엘살바도르로 유학을 간 뒤 내전을 피해 엘살바도르인 아내와 함께 미국으로 정치 망명을 했던 최광씨는 "내 그리운 고향의 강들이 파헤쳐지는 것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라며 릴레이 바통을 이어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