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딸아이는 숨막히는 경쟁이 싫다며 고등학교를 그만뒀다.
연합뉴스
"요즘 딸 뭐해?"
자주 만나는 사람이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든 내게 궁금해 하는 것은 내 안부가 아닌 스무 살 먹은 큰딸의 안부다.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딸은 어느 대학 갔어?"라고 묻지 않는 건 나와 딸에 대한 배려이지 싶다.
3년 전 딸아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한 달 만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마음 한구석 '철렁' 하는 것이 있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그러라고 했다. 단, '이제부터 네 인생은 네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다짐받았다. 딸의 앞날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왜 들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아이의 뜻을 존중해주고 싶었다. 억압적이고 경쟁을 부추기는 학교 문화가 싫다는데, 견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그만둔 딸은, 자기가 '숲 속의 공주'나 되는양 1년 동안 잠만 잤다.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근처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면 우리 집에 들러서 간식을 먹고 놀다가 학원엘 갔다. 학원이 끝나면 밤 12시쯤에 집 앞에서 만나 한 시간 넘게 수다를 떨고 친구들을 집에 데려다주고 오는 게 일이었다. 한심했고 답답했다. '이러려고 자퇴했니?'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길을 못 찾고 있는 제 속은 얼마나 갑갑할까 싶어서 안쓰럽기도 했다. 스스로 인생을 책임지겠다고 한 아이를 믿고 1년을 기다렸다. 그러다 내가 자원교사로 일했던 도시형대안학교인 '꿈○학교'에 다닐 것을 권유했다. 이 학교는 흔히들 '귀족학교'라 비난하는, 등록금도 비싸고 부모 면접까지 보는 등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는 대안학교가 아니다. 학교 부적응으로 중도 탈락한 아이들이 직업체험을 할 수 있는 2년제 비인가 학교다.
"내가 한심하고, 의욕이 없어..."1년 가까이 불규칙적인 생활을 한 딸은 오전 10시까지 등교하는 이 학교에 다니는 것도 힘들어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지각을 하고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수업이 있는 날은 아예 학교엘 가질 않았다. 내가 자원교사를 해서 선생님들을 다 아는데, 참 민망하고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자식 문제에 에미 체면이 중요할까. 선생님들께 그저 잘 이끌어주시라 고개를 숙였다.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 딸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남자친구를 사귀면서 학교생활도 즐겁게 하고 잘 적응하는가 싶더니, 헤어지고 나서는 또 깊은 슬럼프에 빠져 지냈다. 겉으론 위로하고 다독이고 감싸주었지만 속으론 '웬수가 따로 없다' 생각했다.
그렇게 한 학년이 지나자 딸아이는 또 학교를 그만두고 싶어 했다. 4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나서 수능 공부를 하겠다고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도 생기고, 취업을 하는 친구들도 생겨서 맘이 심란했던 모양이다.
하루는 새벽에 자고 있는데, 큰딸이 내 방으로 건너 와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와 "엄마, 나 우울해, 흑흑!"이라며 운다. 이 갑작스런 상황을 어쩌지 못해 딸아이 등을 토닥토닥거리고 있는데, "엄마, 나 어른 되기 싫어. 불안해.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까, 이렇게 시간 낭비하며 살고 있는데, 내 또래 애들은 이제 고 3이라 정신없이 공부하며 살 텐데, 대학도 가구 그럴 텐데, 난 그동안 한 게 아무것도 없구, 내가 한심하구, 뭘 해야 하는진 아는데 하게 되진 않구…. 의욕이 없어. 살고 싶지가 않아"라며 또 흐느낀다.
아, 그랬구나. 네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그저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애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이렇게 자신의 미래를 불안해하고 걱정하고 있는지 몰랐다. 이런 한심한 엄마 같으니라구!
"딸, 걱정하지 마. 니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데 지금 하고 싶지 않다면, 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면 돼. 언젠간 하고 싶은 날이 올 거야. 그리고 학교는 남들보다 한두 해 늦게 다녀도 돼. 또 그까짓 대학 안 다니면 어떠니? 일단 재밌게 지내. 니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을 때까지 이것저것 하며 놀아보자. 알았지?"사람 맘이 참 간사하다. 웬수 같던 딸'년'이 이렇게 힘든 맘으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엔 아이에게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됐다. 그저 건강하게 재밌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 뿐.
네가 선택한 길이 그렇게 힘들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