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스테이 가정에서... 로말도의 여동생인 자누엘라.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웃으며 나를 졸졸 따라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로말도네는 그리 풍족해 보이진 않았다. 나무로 만든 집은 군데군데 부서져서 바람이 통하고 어른 팔뚝만한 대들보 하나가 위태롭게 지붕을 받치고 있었다. 화장실이 없어 집 밖의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고 문 대신 천 조각으로 침실과 부엌, 거실을 구분해놓았다. 집 안엔 침대가 없어 세 개의 딱딱한 평상 위에서 온 가족이 자야 한다.
더군다나 지난번 건기 때 비가 너무 많이 온 탓에 옥수수 농사를 망쳐 먹을 것 역시 풍족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어려운 살림인데도 손님으로 온 낯선 한국인이 불편해 하지는 않을까 온 가족이 걱정하면서 극진히 대접해주었다.
가족들과 대화하기 위해 딜리 탐방 때 받은, 떼뚬어 기초회화가 적힌 종이와 한국에서 준비해 온 워크북에 실린 떼뚬어 단어를 뒤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알파벳으로 쓰여진 발음이 너무 어렵다. '안녕하세요'가 떼뚬어로 Annyeonghaseyo? 알고보니 알파벳으로 써놓은 한국말 발음을 그대로 읽어버린 것이었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가족들은 "나다(괜찮다)"를 연발한다. 그래도 내 노력을 가상하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봉사활동 중엔 볼수록 헷갈리는 떼뚬어때문에 잊지 못할 일이 생기기도 했는데 한 단원이 딜리 탐방 때 어떤 할아버지께 "본디아(안녕하세요)!"라고 아침인사 한다는 것을, 발음이 헷갈려 "보니따(예쁘다)" 라고 하는 바람에 할아버지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날 밤, 일찍 자리에 누웠지만 새벽 한 시부터 닭, 돼지, 염소, 개들이 우는 소리에 뜬눈으로 밤을 샜다. 다음 날 아침, 도서관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일찍 짐을 챙겨 로말도네 집을 나서는데 세바스티아누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아이 엠 유어 파더 인 티모르 레스떼(I'm your father in TImor-Leste)." "나는 너의 티모르인 아빠"라는 세바스티아누 아저씨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동티모르에 든든한 지원군이 생긴 느낌이 든다. 단원들 모두 마을주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그렇게 정든 포로스 마을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