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릿가든2010년의 끝과 2011년의 시작을 하얗게 불태웠던 드라마 '시크릿가든'
화앤담픽쳐스
시크릿가든을 한 7화쯤부터 그것도 띄엄띄엄 보기 시작해서 잘 몰랐는데, 중후반편을 다 보고 역으로 1화부터 훑어보니까, 이 드라마 현빈의 폭풍비주얼 때문만이 아니라 충분히 인기있을 만 했다. 1,2화에서 형성된 캐릭터 관계들과 뿌려진 복선들이 마지막 20화까지 쭉 이어지는, 이 개연성의 힘이 보통 아니다. 그 장치들을 알아챈 시청자라면 폐인 될 만하다. 작가는 처음부터 큰 틀과 그 안의 자잘한 복선들을 갖고 작품의 밑그림을 충실히 그렸고, 그 밑그림은 촘촘한 그물코가 되어 시청자들을 꼼짝못하게 낚아버렸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장치 중 가장 주목받았던 건 영혼체인지였다. 영화 '체인지'나 드라마 '돌아와요 순애씨' 등에서 익히 사용되었던 이 장치는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재벌남과 스턴트우먼이 둘 사이의 격차를 극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계기? 현빈이 브래지어를 올리고 하지원이 쩍벌녀가 되는 등 뒤바뀐 영혼들이 보여주는 소소한 재미들? 이 장치의 존재 이유를 대자면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시크릿가든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영혼체인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혼체인지는 그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시크릿'을 담당하는 '길익선느님'의 전지전능한 영역일 뿐이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서 제일 중요한 키워드는 '무의식'이다. 작가가 그린 이 작품의 밑그림엔 무의식이라는 장치가 짙게 깔려 있다. 기억상실증이란 뻔한 장치가 의미있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화에서, 기억을 잃어버려 정신적으론 21살이 된 상태에서도 34살의 취향 '이태리 장인이 한땀한땀 만든 스팽글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김주원에게 오스카는 말한다. "무의식이란 게 정말 무섭구나"라고. 이 대사가 드라마 시크릿가든을 대표한다.
시크릿가든은 '무의식이란 게 정말 무섭다'는 걸 말하는 드라마다. 사고 당시 엘리베이터에서의 기억을 잃어버렸음에도 김주원이 폐소공포증을 앓는 장치라든지, 길라임과의 기억을 잃어버린 두 번째 기억상실 상황에서도 '무언가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하는 김주원의 대사라든지, 김주원의 옛 여친이자 신경정신 담당주치의의 존재라든지. 이 드라마에는 김주원의 무의식과 관련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그러나 '무의식'과 관련한 가장 결정적인 장치는 맨 마지막에 제시된다.
드라마 초반에 재벌남 김주원은 자신을 거부하는 스턴트우먼 길라임에게 누누히 말한다. "집안 딸려 학벌 안돼 얼굴도 별로에다가 사회소외계층인 너한테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나도 신기하고 얼떨떨하다." 초반에 시청자들은 김주원의 이 대사를 으레 여타 신데렐라 스토리 드라마가 그렇듯이 그저 신데렐라에게 반해버린 왕자님의 멘트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김주원은 '꽃보다남자'의 구준표와, '별은내가슴에'의 안재욱과, '아름다운날들'의 실땅님과 다를 게 없다. "내 구애를 거절한 건 니가 처음이야! 나는 이제 너의 노예~", "내 뺨을 때린 건 니가 처음이야! 나는 이제 너의 노예~" 와도 비슷한 행동유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