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나 지금은 오토바이가 지급돼 한결 나아졌다고.
윤효순
전자우편이 발달하면서 빨간 우체통이 많이 사라지고 편지봉투를 뜯으며 느꼈던 설렘도 맛보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이제는 '우체부 아저씨 고맙습니다'라고 봉투에 적어 넣는 경우도 보기 힘들다. 그래도 변함 없이 은평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다.
"신사동 사는 아무개라고 합니다."
"아, 00아파트 몇호 사시죠?"
오표열(52)씨는 집배원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었다. 지금 맡은 구역은 신사동. 6년간 이 지역을 돌다 보니 이름만 들어도 그 사람이 어느 아파트 몇호에 살며 신문 잡지는 뭘 보는지까지 훤히 꿰고 있다. 동네 주소를 달달 외우는 것만도 신기한 일인데 이정도 되면 가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게 아닐까 싶다.
오씨는 30대 초반에 우체국 공무원이 되었다. 보통은 20대 초반에 시작하지만 많이 늦은 출발이다. 전에 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새 일을 찾던 중 공채 공고가 눈에 띈 것을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그 뒤로 벌써 20년이 흘렀다. 그때 이미 아이 셋을 둔 상태였는데, 그 아이들이 자라 대학에 다니고 있으니 많이 흐르기도 했다.
점심 거르며 우편 배달...명절에는 살인적 물량 우편물이 보내는 사람 손을 떠나 받는 사람 손에 들어가기까지 집배원의 손을 거치지 않는 과정은 없다. 우체통에 넣은 편지, 우체국에 가서 접수한 등기와 소포는 모두 수거해 우편물류과로 보낸다. 거기서 각 동별로 집배원들이 우편물을 분류한다. 하루 배달 일이 끝나면 다음 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하는데, 모두 수작업이다. 우편번호는 집배원 손에 들어가기까지만 유효할 뿐, 나머지는 일일이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고 나누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배달하는 물량이 많게는 하루 3500통에서 적게는 1500통이다. 평균 2천 통이라고 보면 되겠다. 여기에 등기와 소포, 소형 택배 따위 특수우편물이 150여개 더해진다.
"저는 7시 못돼서 나오는데, 퇴근시간은 전체 평균 9시에서 10시 정도로 보면 됩니다. 주 40시간 얘기하는데 우린 해당이 안 돼요. 특수직이죠. 체력도 약해지고 건강 문제에 취약해요."
격무에 시달리지만 아프다고 해서 쉴 수도 없다. 결원이 생기거나 누군가 사정이 있어 못 나오게 되면 동료들이 빈 자리를 메운다. 그래서 한달에 두 번은 토요일에도 일을 한다. 최근에는 연말연시라 카드사와 보험사의 소득공제 서류가 넘치는 상황이다.
명절이 되면 택배가 넘친다. 은평우체국에만 하루에 1만 개 넘는 택배가 들어온다. 연말에서 설까지는 특히 바쁘다. 워낙에 많다 보니 차로 실어다가 아파트 공터에 부려놓고 분류하기도 한단다. 명절 선물은 먹을거리가 많다 보니 무겁다. 20~30kg 나가는 상자를 하루 종일 온 동네에 배달한다는 건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지금은 오토바이라 나아요. 초창기에는 자전거 타고 가방 메고 다니느라 힘들었어요." '내 시간에 맞춰 달라'는 주민... 힘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