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샘섬진강 발원지인 천상데미 아래 데미샘, 천상데미란 '천상으로 올라가는 봉우리'란 뜻이다. 다른 사람이 우기지 못하게 표지석을 세워놓았다.
한봉희
지금도 전북 장수군에 가면 수분리란 마을이 있고, 그 동네에 수분재라는 고개가 있다. 水分이라 하면 당연히 물을 나눈다는 말인데 수분재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즉 고개 이쪽으로 빗물이 떨어지면 그 물은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가고, 고개 저쪽으로 떨어지는 빗물은 금강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더 극적으로 얘기하자면 수분재 한가운데에 양철지붕을 한 집이 한 채 있는데, 빗물이 지붕 이쪽으로 토독~하고 떨어지면 섬진강, 저쪽으로 투둑~하고 떨어지면 금강이 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는 사이좋게 벗하며 아옹다옹 내려온 이웃 빗물들이 단 몇 센티 차이로 영영 생이별을 한다는 것이다.
섬진강의 섬은 두꺼비 섬(蟾)자 이다. 여기에는 이런 유래가 전해진다. 고려 말, 왜구가 섬진강을 따라 거슬러 쳐들어왔단다. 그 때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짜장~~하고 나타나는 무리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두꺼비떼였다. 두꺼비가 떼로 지어서 허벌나게 울어대니, 간이 콩알만한 왜구놈들이 기겁을 하고는 허천나게 도망갔다는 이야기다.그래서 그때부터 두꺼비 섬(蟾), 나루 진(津), 해서 섬진강이라 불렀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이야기의 진위를 따질 필요도 없지만 한 가지 추측해 볼 수 있는 건, 지금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예전에는 그만큼 섬진강에 두꺼비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전남 광양 다압면에 있는 섬진마을에 가면 이러한 섬진강 유래비와 두꺼비상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그러면 그 이전부터 몇 천 년 흘러온 섬진강의 본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몇 해 전에, 마음속으로만 품고 있던 데미샘을 직접 두발 딛고 올라선 적이 있었다. 갈만한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그곳에도 푯말 하나 서 있는데, 이렇게 적혀있다. '섬진강은 단군시대에는 모래내, 백제시대에는 다사강, 고려초에는 두치강으로 불리우다가...'.
이름을 보면 짐작하겠지만, 모래내나 다사강이라는 이름은 그만큼 모래가 많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숨겨진 이 강을 처음 발견한다면 분명히 그런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그만큼 여전히 많은 모래를 품고 있는 것이 섬진강이다. 바닷가 해수욕장 같은 모래사장을 볼 수 있는 강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이것도 마냥 기쁘게 기억할 수가 없게 됐다. 이 땅의 모든 강이 4대강 개발이라는 어이없는 삽질로 난도질당하고 있으니, 강에서 모래를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심하고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