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식민지시대에 태어나 꿈을 피워보기도 전에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황금주 할머니
정대협
한파주의보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15일, 부산 한 요양원에서 지내고 계시는 황금주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황금주 할머니는 1922년 음력 8월 15일 충남 부여에서 한 선비집안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일제식민지 시대 조선의 백성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가난 때문에 가정형편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아버지마저도 건강이 좋지 못해 늘 누워지내야 했습니다. 그런 집안 형편으로 인해 황금주씨는 13살 어린 나이에 서울에서 큰 장사를 하고 있던 함흥 최씨 집에 양녀로 가게 되었고, 2년 후에는 함흥집으로 옮겨서 집안 일을 도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말은 양녀였지만 집안의 궂은 일들을 해야 하는 남의집살이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 부인을 잘 만나 17살이 되던 때부터 2년 동안 야학에서 공부도 할 수 있었습니다.
황금주씨에게도 식민지의 무서운 공포가 찾아왔습니다. 동네 일본 반장 부인이 일본의 군수공장에 3년 계약기간 동안 가서 일을 하면 큰 돈을 벌 수 있다면서 한 집에서 적어도 한 명은 나가야 한다고 권유하고 다녔습니다.
양모의 두 딸들도 그 대상이었습니다. 그 일로 걱정하던 양모를 위해 황금주씨는 빚을 갚고싶다는 생각에 자신이 대신해서 가겠다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길로 동네에서 1명의 여성과 함께 중국 길림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 때가 황금주씨가 스무살이 되던 1941년이었습니다.
길림에서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5년 동안 황금주씨는 일본군성노예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습니다. 24살에 해방이 되었지만 전쟁터에 그대로 버려졌고, 혼자 걸어서 서울로 돌아와 야채장사, 국수장사, 식당 등 온갖 궂은 일 다하며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1991년 8월 14일,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증언 소식을 알게 되었고, 황금주씨도 피해자로 신고를 했습니다. 이후 일본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고, 1992년 8월에는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와 함께 유엔인권소위원회에 직접 참석하여 증언을 하여 국제사회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