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에게는 여전히 '지못미'가 필요한가?

1987년, 1992년 그리고 2010년 은평

등록 2010.07.24 16:17수정 2010.07.24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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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가슴 아리게 하는 이 한마디는 우리 시대에 '지못미'라는 신조어를 낳게 했다. 그때 그곳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지켜주거나 지지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의 언어, 나아가 다시는 그때처럼 외롭게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또 결정의 순간이 되면 다른 핑계거리가 생기더라도 말이다)의 언어인 '지못미'가 진보 세력에겐 유감의 언어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게 요즘 생각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지못미'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한명숙 전 총리가 절규한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일 것이다. 전직 대통령이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검찰 수사로 격심한 인간적 고통을 당하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 자체로 '지못미'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헤집었다. 물론 그것만은 아니었을 거다. 퇴임 후 자신의 과오를 끊임없이 돌아보고, 진보의 길을 묻고자 했던 그가 더 이상 사고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움도 한몫했을 것이다.


2008년 봄에 분 진보의 지못미


그러나 '진보'와 '지못미'를 이어준 사람은 따로 있다. 바로 진보신당의 심상정 전 대표. 2008년 총선에서 심상정 후보가 3,800여 표 차이로 아깝게 졌을 때, 심상정 후보의 패배가 자신의 책임이라 여기며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진보 안에 지못미를 키웠다. 당시 심상정이라는 인물이 (탈당 전의) 민주노동당 대표 경선 시절부터 우리 사회의 '새로운 진보'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는 점에서, 심상정 지못미는 결국 새로운 진보 지못미였다.

 

2010년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스스로를 쇄신하지 않은 채 과거로 돌아가자는 민주당, 진보적 가치로 대중적 열망을 모아내는 데 지쳐 제1야당에 기대어 후일을 도모하자는 민주노동당, 지난 십 년 동안 벌어졌던 권력 투쟁의 산물인 다양한 야당 정치 세력 등은 '연합 정치'라는 카드로 생명 연장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형성된, '묻지 마' 반MB연대는 여전히 새로운 전망과 대안을 내놓기 위해 부심하고 있는 '진보' 세력에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이른바 이명박 정권이 보인 폭정은 민주당이 여당 시절 저지른 실정(참여정부 인사들의 당인 현재의 국민참여당도 핵심적 책임이 있다), 특히 신자유주의적 경향으로 한국 사회의 위기를 증폭시킨 역사적 과오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가져다주었다.

 

진보의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이다. 권위주의를 무너뜨리고 대의 제도를 합리적으로 마련, 운영하는 것을 '민주공화국'의 핵심과제라고 여기는 소위 '쌍팔년도식 민주주의'가 지금 필요한 진보의 모든 것처럼 보이는 어처구니없는 세몰이가 시작된 것이다.

 

자연스레 대중에게 '힘 있는' 대안 세력으로 보이지 못하는 진보 세력은 반MB연대에서 존재감을 잃게 되었다. 게다가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무리한 대응과 한명숙 후보 등장으로 반MB연대는 광풍으로 증폭되었다.


2010년 야권 단일화에 묻힌 진보 정치


그러니 지난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직면한 햄릿의 상황은 분명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그 다른 선택이 하나로 모이는 우회로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미뤄두자.) 그런데 이런 상황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동자, 민중의 대통령 후보' 백기완 선생이 막바지에 사퇴했었다. 그의 사퇴를 강제한 것은 아마 '반독재 민주화'라는 명분이었을 거다. 20년이 넘게 흐른 2010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1987년 체제'라는 프레임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프레임을 바꾸지 못한 책임은 당연하게도 진보 세력에게 있다. '잃어버린 십 년'은 한나라당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1997년의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것은 진보 세력도 마찬가지였다. 정서적 감동은 대안과 전망이 있을 때만 문턱을 넘는 힘이 될 수 있는데,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그렇기에 진보 '지못미'의 주인공 심상정 후보는 사퇴할 수밖에 없었고, 노회찬 후보는 외로운(?) 길을 가야 했다.

 

하지만 노회찬 대표의 선택이 외로운 길이었을지언정 의미 없는 일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퇴했던 백기완 선생은 1992년 선거에서는 끝까지 갔다. 이때 백기완 후보가 얻은 표는 23만 표이고, 득표율은 1%였다.

은평을 재보선, 금민의 지못미로 끝나야 하는가?


겉보기에 미미한 이 숫자는 이후 진보 정치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노동자, 민중의 독자 정치세력화'의 흐름은 사회당과 민주노동당의 창당으로 이어졌고, 2004년 민주노동당의 원내 진출로 하나의 순환을 이루었다.

 

노회찬 후보의 완주도 그런 효과를 가져올까? 2010년 7월 은평을에서 치러지는 국회의원 재선거에 임하는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후보 금민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까? 은평을에서도 선거 막판에 야권 단일화를 위한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의 시도가 속도를 내고 있다. 막판에 급하게 속도를 냈기 때문에 덜컹거리기는 하지만 아마 내일까지는 '야권 단일후보'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재오의 쟁점 회피 선거 전략과 민주당 등의 낡은 구호가 맞물려 별다른 쟁점이 없던 이번 선거에 최대 쟁점이 생긴 셈이다.

 

그 때문에 진보적 지식인과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진보신당과 사회당 후보인 금민 후보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되었다. 기본소득과 보편 복지라는 진보 대안을 유권자에게 심판받을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다시금 야권 연대라는 이름으로 진보를 희생시키는 흐름에 휩쓸려 가버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진보의 고유한 가치와 대안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시 '지못미'의 감정을 지닌 채 고개 숙여야 하는가?

 

금민이 지난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은 것은 향후 재구성될 진보 정치 세력의 중요한 한 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두 달 만에 자리가 바뀌었다. 스스로를 지켜야 하고, 지켜주는 사람을 모아야 하고, 이를 기반으로 내일로 나아가야 한다. 더 이상 '지못미'가 아니라 함께 가고자 하는 사람이 모일 때다.

2010.07.24 16:17ⓒ 2010 OhmyNews
#은평을 재보선 #금민 #노회찬 #사회당 #진보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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