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M의 삶을 다룬 영화 '3XFTM'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오랜만에 만난 고교동창, 남자가 되어 있었네요즘에도 문득 사람들에게 불편한 이야깃거리가 되어버린 네 존재를 생각해. 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정신과 감정의 '비정상성'을 느끼면서 괴로워했겠지. 여기에 더해 자신의 육체에 대한 이질감까지 느껴야 했던 네 유년기, 그리고 현재. 그 고통의 시간이 난 아깝고 안타깝다.
다수의 사람들, 그리고 성적 소수자 문제에 둔감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트랜스젠더(자신의 육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문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그랬거든. 동성애는 이해했지만 양성애는 종교로 치면 이단 정도로 생각했고, 양성애자의 진솔한 고백을 들은 후로 양성애를 이해하게 됐지만 트랜스젠더 문제는 여전히 알쏭달쏭했어.
너는 동성애는 물론이고 트랜스젠더 중 FTM(Female To Male, 여자→남자)과 MTF(Male To Female남자→여자)의 상황도 달리 다루어져야 할 문제라고 말했지? '성적소수자'라는 말로 묶어놓고 다루기에는 복잡하기 민감한 문제니까 말이야. 너는 여자이지만 여자를 사랑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동성이 아닌 이성을 사랑한 것이었으니까 동성애라고 할 수 없지. 너의 몸은 여성의 몸이지만 정신은 남성이었으니까 말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너는 정신이 남성인 것이 아니라, 몸을 뺀 나머지가 남성이었다는 사실. 그래, 네가 말하고 있듯이 너는 남자인 거지.
너는 FTM(Female To Male)이야. 봉긋하게 튀어나오는 젖가슴을 증오하고 불룩 튀어나오지 못한 밋밋한 밑을 보면서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너의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는 사실이 죽을 만큼 싫었다고 했는데 네가 살면서 느꼈을, 그리고 앞으로도 느낄 가장 큰 부조리가 바로 '타고난 너의 몸'일 거야.
그래도 친한 친구들에게나 가족에게까지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 네 용기에 박수치고 싶어. 너는 커밍아웃을 할 경우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가장 큰 짐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숨겨왔던 말을 뱉어놓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우리에게도 인정받고 나니까 오히려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성적 소수자로서 커밍아웃을 할 때 앞으로 움츠러들어 살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자신감이 생기고 행복해졌다는 너를 보면 마음이 조금 놓인다.
남자의 몸을 사려는 친구, 웃을 수 있겠지너는 이제 남성의 몸을 사려고 한다. 성전환 수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육체를 배제하고서라도 성적 정체성을 찾으며 살아갈 것인가는 트랜스젠더들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넌 수술을 선택했더구나. 엄청난 수술비를 감당하기 위해, 그래서 남성의 몸을 갖기 위해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무거운 짐을 들며 돈을 번다.
누군가는 네가 흘리는 땀이 역겹다고, 더럽다고, 질병의 결과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몰이해와 편견을 깨기를 바라지 마라. 차라리 넘어서겠다는 각오로 네 삶을 살아. 너의 고통은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있어 결코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이야. 온전히 이해받을 수도,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지도 확신할 수 없지.
그러니 누군가 욕을 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고 앞으로도 당당해도 돼. 필요하다면 한국퀴어아카이브 '퀴어락'이라는 홈페이지(
http://www.queerarchive.org/)에 들어가 봐. 성적소수자와 관련된 국내외의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인 기록물을 수집, 정리, 보존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상으로 누구나 검색, 열람, 이용, 교류하는 것을 꿈꾸는 비영리 공공 아카이브래.
너는 이미 너 자신에 대한 정의가 끝났다고 이야기했지만 네가 나아갈 길을 세우는 데에 보다 깊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네가 살아온 23년과 나의 23년의 길이는 결코 같을 수 없다. 길었던 만큼 더 행복해지기를. 내년 이맘 때에는 네가 태국행 비행기에 타있기를 바란다. 네 몸을 사러 가는 길에서도 웃을 수 있을 거야.
"많은 사람들이 내(트랜스젠더)가 젠더시스템을 위반한다고 말하는데 내가 젠더시스템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라 젠더이분법이 나를 위반합니다."-리키 앤 윌킨스(Riki Ann Wilch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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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몸 사려는 친구, 태국행 비행기 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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