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막바지인 신축 빌라몇 달 전까지만도 아담한 주택이었는데, 어느새 위풍당당 신축빌라
변상화
멀쩡한 주택이 몇 달 사이 빌라로 바뀌어 입주를 기다린다. 집 한 채 있던 자리에 몇 세대가 들어서니 집 밖 공간은 주차 시설을 마련하느라, 집 안 공간은 방, 부엌, 화장실을 늘리느라 빠듯하다.
하루아침에 장독대는 찬밥 신세다. '장독대가 없는 집에 사는 요즘 애들은 어디에 숨을까?' 방문 걸어 잠그든지 집 밖으로 뛰쳐나가든지 둘 중 하나겠지?
얼마 전 장독대가 사라진 게 단순히 몸 숨길 장소가 없어진 것만이 아니란 생각이 드는 일이 있었다. 방학 때 시작한 급식실 공사가 3월 개학 후에도 끝나지 않아 한동안 학생들은 도시락을 싸왔고, 선생님들은 학교에서 밥을 해 먹었다. 쌀쌀한 날씨에 찌개가 있으면 좋겠다 싶어 만만한 된장찌개를 몇 번 끓였더니 다들 맛있다며 기분 좋게 드셨다.
"된장찌개는 된장이 맛있어야 하는데, 집에서 담근 된장인가?" "네, 그럼요."이제껏 집에서 담근 장만 먹어서 당연히 그렇다고 했는데 몇 몇 선생님은 장을 사 드신단다. 젊은 선생님이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한데 장을 사 드신다는 선생님 중엔 40~50대 선생님들도 계셨다. 난 그 사실에 적잖이 놀랐고, 다른 건 모르겠지만 장을 사 드신다니 좀 안 됐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론 지금 내가 누구를 걱정할 처지인가 싶다. 나도 엄마가 더 이상 장 담글 상황이 안 되면 마찬가지 신세 아니겠는가? 사 먹기 싫으면 담가 먹어야 할텐데, 장 담그는 것을 생각하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어릴 적 마당에서 고추장 담그는 걸 몇 번 봤다. 고춧가루를 넣기 전에 넣는 묽은 죽 같은 걸 한 그릇 퍼 먹었는데, 달짝지근한 게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메주는 콩으로 쑤는 건 알지만 메주로 어떻게 간장을 담그는지, 메주는 노란색인데 그걸로 담근 간장은 왜 까만지. 어린 시절 나는 꽤나 그것이 궁금했다.
'사 먹을 수 있으면 사 먹으면 그만이지 그걸 뭘 담가 먹겠다고 하냐' 할지 모르겠다. 안 그래도 바쁜 세상, 먹는데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자는 얘기일 것이다. 그래도 어디 그런가? 우린 다들 먹고 산다. 먹어야 기운이 나고 먹어야 일도 한다. 먹을거리는 우리 몸과 마음, 생각과 말을 만든다. 그런 먹을거리 중에서도 기본인 장을 사 먹으면서까지 애쓸 일이 뭔가 싶다.
'된장녀'란 말이 있다. 명품 살 능력도 없으면서 명품을 즐기는 여자를 비유하는 말이다. 가만 보니 나도 된장녀를 꿈꾼다. 물론 내게 명품은 차 댈 자리를 포기하고 확보한 장독대, 일 년 내내 준비하고 담근 내 집 된장이다. 그것들이 내 삶을 명품으로 만들어 주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나는 된장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