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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이 아닌 민간인들에 대한 체계적인 공격작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상부의 명령과 지시가 있었기 때문이다. AP통신은 1950년 7월 25일 미 제5공군 작전부장 터너 로저스(Turner C. Rogers)에 의해 작성된 「Policy on Strafing Civilian Refugee(민간 피난민 기총소사 정책)」라는 문서를 발굴해냈다. 문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50년 7월 25일
팀버레이크(Timberlake) 장군에게
제목: 민간 피난민 기총소사 정책
Ⅰ. 문제점
1. 도로로 이동하는 민간 피난민에 대한 제5공군 예하 부대의 기총소사 공격 지침의 수립
Ⅱ. 문제점과 관련된 사실들
2. 북한군으로 구성되어 있거나, 북한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많은 민간인들이 미군 진지로 침투한다는 보고가 있다.
3. 육군은 미군 진지로 접근하는 모든 민간 피난민들에게 항공기로 기총 공격할 것을 요청했다.
4. 현재까지 공군은 미 육군의 요청에 응해왔다.
Ⅲ. 토의
5. 민간인들에 대한 기총 공격을 포함하는 우리의 작전은 광범한 대중의 관심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고, 이런 상황은 UN과의 관계에서 미 공군과 미 정부를 난처하게 만들 것이다.
6. 이러한 민간인 집단들은 미군 진지를 통과하여 도로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육군이 왜 이러한 인원들을 막지 않고 이들이 통과할 때 사격을 실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또한 항공작전에는 좀 더 적합한 표적이 있을 것이며, 이러한 표적이 파괴되면 결국 유리할 것으로 판단된다.
Ⅳ. 건의사항
7. 공군의 보호를 위해서, 제5공군은 민간 피난민 무리 속에 북한군이 포함되어 있거나 또는 이들이 적대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을 경우에는 민간 피난민들을 공격하지 말라는 지침을 수립할 것을 건의한다.
8. 또한 상기 내용을 미 8군사령부에 통보할 것을 건의한다.
터너 로저스(Turner C. Rogers) 대령, 작전부장.
위 문서는 1950년 노근리 사건이 발생한 7월 25일 이전부터 미 공군은 육군의 요청에 따라 피난민 대열을 향해 기총소사를 가했음을 밝히고 있다.(Ⅱ-3, 4) 특히 이 자료는 제5공군 정보부장과 함께 남한지역 전술항공작전을 책임졌던 제5공군 작전부장이 작성한 문서였고, 수신자 역시 제5공군 부사령관 팀버레이크였다. 작전부장 로저스는 피난민 대열에 대한 기총소사가 외부에 알려질 경우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하면서,(Ⅲ-5) 중지를 건의하고 있다.(Ⅳ-7) 미군 스스로도 피난민에 대한 무차별 공격이 부당한 행위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간인 공격 작전에 대한 명확한 근거 문서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01년 한미합동조사단이 발표한 <노근리사건 한‧미 공동발표문>에서는 "미 공군 조종사 출신의 증언자들은 그러한 지침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내용을 묵살해버렸다. 미국 정부의 무책임성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조차 외면하고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역사의 진실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왜곡되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전쟁 초기의 미 제5공군 임무보고서와 당대 실시된 조종사들의 인터뷰는 무차별 폭격을 증명하고 있다.(김태우 박사논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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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최첨단의 군사기술을 바탕으로 한 전술항공통제시스템을 통해, 공식적인 군사작전의 수행 차원에서 적이 아닌 민간인들을 무차별 공격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했다. 이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인 것인가? 미군이 주장하는 대로 전시 군사작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발생한 부수적인 피해로 규정하고, 거기에서 멈추어야 하는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란, 미군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정당한 군사목표가 아닌 사람들이나 사물들에 대해 비의도적 혹은 우발적으로 입힌 상해(injury)나 손해(damage)"를 의미한다.
백번 양보해서, 미 공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이 '학살'이라기보다는 '작전'으로 분류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는 사실상 한국의 모든 주민을 '잠재적인 적'으로 취급한 학살행동이다. 실제 미군 전폭기 조종사들은 민간인들을 '적군의 지원세력' 이나 '위장한 적군'이라는 꼬리표를 붙여서 자신들의 무차별 공격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민간인을 잠재적인 적으로 규정한 이면에는 한국인에 대한 미군의 인종주의적 편견도 작용하고 있었다.
나아가 작전이 수립되고 수행되는 과정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과연 민간인 공격 작전이 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의도적인 학살행위라는 것이 분명해진다. 특히 1950년 7월 11일 전북 익산지역에 대한 미 공군 B-29기의 폭격은 전쟁 발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아직 주민들이 전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었으며 피난 가는 사람 하나 없는 평화로운 상황에서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1950년 8월 초순에 발생한 경남 창녕, 마산, 사천 지역의 폭격 역시 아직 인민군이 이 지역 근처에도 오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수세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불가피한 작전 행동이었다는 것은 학살에 대한 책임과 반성 없는 미군 측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전쟁에서 민간인의 희생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학살을 정당화하는 무리들이 있다. 전쟁의 '기술'은 문명의 진보와 함께 더욱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변해왔지만, 이러한 미명 하에 치러진 전쟁은 훨씬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다. 전쟁 중인 적국의 국민이라도 민간인은 함부로 죽일 수 없으며, 또 적군이라도 항복 의사가 분명하면 처형할 수 없는 것이 국제법의 기본이다. 영화 <작은 연못>에서 실감나게 그려진 피투성이의 악몽이 단지 한국전쟁에서 뿐이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영화 <작은 연못>이 현재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역사의 재구성이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반전평화의 실천적 메시지까지 던져준 것이 아닐까.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휴전중인 분단 상황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세대에게 전쟁의 본성과 함께 양심의 실천적 행동까지 촉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0.05.20 19:32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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