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이진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요정'이 돌아왔다. 아, 오해는 마시라. 대중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요정을 말한 건 아니니까. 인디음악 팬들이 열광하는 건 인디계의 요정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본명 이진원, 이하 달빛요정)의 컴백이다.
'절룩거리네', '스끼다시 내 인생' 등의 대표곡으로 대중음악계에 파란을 일으켰던 그가 지난 3월 3일 3.5집 비정규앨범 (EP) '전투형 달빛요정-Prototype A'로 또 한 번 팬들과 대중 앞에 섰다. 1년 5개월 만에 새 앨범으로 돌아온 달빛요정을 지난달 22일 서면으로 만났다.
혹자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란 밴드의 이름조차 생소할지 모르겠다. 사실 이 밴드의 정체는 달빛요정 '이진원' 그 자체다. 그 혼자 작사, 작곡, 편곡, 레코딩, 믹스까지 맡고 있는 1인 밴드이기 때문이다.
'달빛요정'이란 이름은 그가 중학교 시절 보았던 박봉성 작가의 만화에 등장한 프로젝트 비밀 조직의 이름에서 따왔다. 거기에 단순히 야구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을 반영해 '역전만루홈런'을 뒤에 붙인 것이라고.
달빛요정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2008년 장기하의 '싸구려 커피'가 그랬던 것처럼, 2003년 발표한 그의 1집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의 대표곡 '절룩거리네'는 당시 신해철이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고스트스테이션>에서 5주 연속 인디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달빛요정'이 돌아온 이유, '2009년 5월''패배주의의 결정체'라는 평을 들으며 본의 아니게 요정이 '루저킹'으로 불리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당시 한정판으로 자체 제작한 1집 앨범은 발표 25일 만에 매진됐고, 재발매 이후 1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그의 앨범이 골방과 지하실에서 '가내수공업'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던 관계자들이 그의 성공에 혀를 내두른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후작에 대한 대중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요정의 말대로 "주류로 편입해보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1.5집 <소포모어 징크스>와 2집 <스코어링 포지션>은 그에게도, 팬들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한 앨범이었다. 그래서였을까. 2008년 발매한 정규 3집 <굿바이 알루미늄>을 끝으로 달빛요정이 음악 활동을 접는다는 이야기도 들려 왔다.
"그때는 정말 '음악을 관둘까'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었지만, 3집 앨범의 콘셉트가 '실패한 뮤지션'이다 보니 작업을 하면서 제가 만든 가상의 인물에 동화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이게 진짜 내 모습 같기도 하고요."
그랬던 그가 '전투형' 달빛요정으로 돌아온 건 그래서 더욱 반가운 일이다. 이번 앨범에는 타이틀곡 '축배'를 포함한 총 4곡의 신곡(입금하라, 나는 개, 피가모자라)과 3집 앨범에 실렸던 노래를 재편곡한 2곡(치킨런 sad ver., 고기반찬 rock ver.) 등 총 6곡이 실렸다.
전작에서 느껴졌던 '루저'스러운 그의 시각은 이번 앨범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앨범의 제목대로 그의 노래를 '전투'적이라고 평해도 무리는 아니다. 특히 "왜 나를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나를 혁명가로 만들어"라는 가사처럼 군데군데 다소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표현들도 눈에 띈다. 하지만 달빛요정은 그저 "솔직한 음악을 결심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음악을 만들게 된 계기는 2009년 5월의 '그날' 때문이라고 고백했다.
"6년 하고 지쳐서 1년 쉬려고 했는데 2009년 5월에 각성을 하는 바람에 별로 쉬지도 못하고 3.5집을 냈습니다. 전투라면 전투(제 표현대로라면 솔직한 음악)를 결심하게 된 때도 2009년 5월입니다. 그게 어떤 때인지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를 겁니다. 그 계기를 통해 제가 세상을 보는 관점이 조금 바뀌었다고나 할까요. 음반을 듣고 누구를 상대로 한 전투인지 생각이 난다면 제 의도가 옳게 전달된 것이고요. 잘 모르겠다 싶으면 메카닉 로봇물의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의 무리라고 설정하시거나, 달빛요정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새노래 '나는 개'는 유통기한이 있는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