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선생 봉분 나직하여 땅과 잘 어울린다.
정학윤
박경리 선생(192610월28일~2008년 5월5일). 그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이름으로 남은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생의 나이 24세 때인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납북된 남편 김행도와 생이별 한 후, 슬하에 남은 외동딸 김영주와 모진 세월을 이어갔었다. 그 딸과 결혼한 사위인 김지하 선생의 명성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김지하의 장모 박경리라고 불릴 만도 했건만, 박경리 선생의 이름과 사위 김지하의 이름 순서는 바뀌지 않았던 듯하다.
조금 엇길로 새는 이야기지만 우리 어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서방 복 없으면 자식 복도 없다더만..." 천하한량 남편에게서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라도 구하려 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치 못하던 나를 향해 하시던 말씀이었다. 그처럼 선생 또한 남편과 생이별하고 외동딸을 키워서 얻은 사위 또한 그 젊은 시절 대부분을 감옥에 들락거렸으니, 선생의 굽이굽이 굴곡진 삶의 자락마다 남아있는 회환은 얼마나 깊었을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