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남소연
"아무거나 만지지 말랬지?"
감기에 걸린 세 살짜리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10여 분이 몇 시간은 된 듯 길게만 느껴졌다. 아들 녀석은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관심을 뒀다. 관심을 두기만 하면 차라리 좋기나 하지. 기어이 만져봐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보이는 것마다 손 먼저 뻗었다.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분리대를 만지작만지작, 인형 뽑기 게임기도 만지작만지작,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바퀴도 만져보고, 와플 가게에서 매달아놓은 닭 모양 인형도 만져보고, 문방구 앞에 놓인 뽑기통에서 뽑기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그러는 동안 아이 손은 점점 새까매져갔다. 내 눈이 절로 찌푸려졌고, 입에서는 연신 '안 돼', '만지지 마', '손, 입으로 가져가지 마', '제발' 등등 잔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벗기고, 손까지 씻기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요놈이랑 같이 외출하나 봐라.'느긋하던 나를 '안절부절 엄마'로 만든 신종플루 아이와 외출하는 게 늘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더러움을 허할만한 아량은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들어와 주머니에서 모래를 한 무더기로 내어놓고, 새까매진 손발을 내밀어도 신나게 놀았겠구나 싶어 흐뭇해했다.
또 작은 녀석이 산책길에 만나는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만져볼 때도 '그래 그 나이 때는 손으로 만져봐야 궁금한 게 풀리지'하며 내버려 두었다. 함께 간 옆집 아이 엄마가 '애 좀 말려요'하는 소리에도 '내비둬~ 나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 애들은 저보다 더 했는데도 잘만 컸어'하면서 적당한 더러움이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고 녀석, 신종플루가 우리 주변을 덮치고부터는 내 마음도 안절부절이 되어 갔다. 학교 갈 시간이 넘는 시각에 몇몇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고, 그로부터 얼마 후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가 휴교를 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 아이네 유치원이 휴원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결국 며칠 전에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마저도 신종플루 확진자가 있어서 휴원 한다는 연락이 왔다. 언론에서는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 수를 연일 보도했고 그 중에는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아이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몇 달 전에 샀다가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손소독제를 꺼내놓았고, 아이가 기저귀를 뗀 뒤로 구입하지 않았던 물티슈를 다시 사다놓았다. 외출할 때는 앞에 두 가지 것과 손 세정제를 꼭 챙겼다. 아이를 감시하는 눈초리도 늦추지 않았다. 행여나 뭔가를 만진 손을 입으로 가져갈까봐 손만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다 아이가 손을 입 근처로 가져가기라도 할라치면 최대한 빠르게 아이 이름을 불러 제동을 걸었다.
느긋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외출해 있는 동안은 늘 조바심이 났다. 어서 빨리 일 보고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다보니 자연 아이와 함께 외출할 기회가 적어졌다. 서점을 데리고 가고 싶어도 망설여졌고, 도서관이나 놀이터를 향하는 발걸음도 줄었다. 큰 놈이 마트라도 가자고 하는 날에는 신종플루 핑계를 댔다. 아이도 유치원에서 교육 받은 게 있어서인지 신종플루 얘기를 꺼내면 마지못해 수긍을 했다.
신종플루가 몰고 온 텔레비전 괴물그런데 집에만 있다 보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큰 아이가 텔레비전만 보려 든다는 것이다.
"엄마, 나 심심한데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