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방송된 MBC 스페셜 '취업난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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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는 대학교 4학년, 나의 하루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된다. 매일 아침 내가 찾는 곳은 신촌의 한 영어전문학원. 기업에서 요구하는 토익점수(공인영어점수)를 얻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 학교에 가기 전 한 시간씩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학원을 다닌 지 벌써 두 달째, 그간 들어간 학원비만 해도 50만 원을 훌쩍 넘는다. 오전 7시를 막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교실은 토익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대학생이 '토익' 학원 다니는 건 기본이에요. 요즘엔 '토익 스피킹'도 해야 해서 다들 학원 두 세 개쯤은 다녀요."
옆자리에 앉은 취업준비생 홍수진(24)씨가 말했다. 수진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벌써 6개월째 구직활동을 하고 있다. 2009년 하반기 취업을 노리는 그녀는 현재 '취업 5종 세트'를 갖추기 위해 노력중이다.
'스펙'은 컴퓨터에만 있는 게 아니다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공통된 패턴이 있다. 바로 '취업 5종 세트'라고 불리는 토익점수, 어학연수, 자격증, 인턴경력, 봉사활동 등의 '스펙'을 준비하는 것.
원래 스펙(specification)은 사양이나 명세서를 의미하는 영어단어다. 그러나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펙은 취업하기 위한 외적조건이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취업 5종 세트 중 한 가지라도 없으면 취업할 수 없다는 불문율이라도 있는 건지, 취업준비생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9일 늦은 밤, <MBC스페셜>은 '취업난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한일 공동기획 프로그램을 방송했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토익 고득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변변한 인턴 자리 하나 얻기 어려운 심각한 취업난에 대한 내용이었다. 하반기 기업 채용을 지원하는 한 학생은 하루에 2편씩, 밤을 새우며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를 쓴다고 했다. 한 달이면 50개가 넘는 엄청난 양이지만 취업준비생들에겐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대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홍수진씨도 9월 한 달 동안 무려 2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했다. 20번의 자소서는 그녀에게 매일매일 주어지는 과제가 되었다. 다이어리에는 빼곡하게 입사원서 마감 날짜가 적혀 있다. 힘들 법도 한데 "100개 정도 쓰면 한 개는 붙겠지"라며 웃는 여유까지 보인다. 이 불황에 신입사원을 뽑아준다는 것에 '황송'하다면서 말이다.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스펙증후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