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서 본 비양도.
제주의소리
비양도에 케이블카를 놓으려는 건설업체에서는 케이블카가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변한다. 라온레저개발은 케이블카를 비롯한 5대 핵심 사업을 완성하고 연계해 한림지구를 동북아의 대표적 체류형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케이블카가 체류형 관광의 불가결한 요소라니,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케이블카는 '빠른 관광'의 대표주자다. 케이블카를 타면 케이블카로 되도록 빠른 시간 안에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왕복형 교통수단의 전형이 바로 케이블카다. 케이블카를 타고 비양도에 들어간 관광객이 비양도를 느릿느릿 서너 시간 즐기거나, 섬에서 하룻밤 머물 거라고? 천만에, 만만의 콩떡이다. 렌터카 관광 이후 제주여행 기간이 더 짧아졌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빠른 관광과 체류는 모순 명제다.
배를 이용한 비양도 관광이 반나절 관광이었다면(현재 한림-비양도간에는 오전, 오후 두 번밖에 배가 다니지 않으므로), 케이블카 시대에는 1~2시간으로 줄어들 것이다. 맞은 편 한림지구에서도 케이블카의 존재는 체류형 관광에 별 도움이 되지 않거나 외려 독이 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제주섬에서 느긋한 휴식을 원하는 여행자라면 설령 호기심에 잠깐 케이블카를 탈지라도, 거대한 철탑과 케이블이 가로지르는 바닷가에 오래 머물고 싶겠는가. 한국 토목기술이 이뤄낸 걸작품(!)을 굳이 감상하려는 엽기적 취미를 가진 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탈리아와 그리스 섬에서는 일부러 관광객을 불편하게 만드는데케이블카 관광이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찾기 힘들지만, 반대의 사례는 수두룩하다. 진입 속도가 느릴수록, 접근이 힘들수록, 문명과 거리를 둘수록,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할수록, 체류형 관광지로 더 각광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그리스 아리골리즈 반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섬, 이드라(Hydra)다. 이 섬은 케이블카는 물론이려니와, 자동차와 자전거마저도 철저히 막고 있다. 이 섬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사람의 다리와 노새뿐. 전세계에서 몰려든 부유층 관광객들은 해변에서 늘어지게 일광욕을 즐기거나, 느릿느릿 걸어 다니거나, 노새를 타고 섬을 한 바퀴 돌아본다.
호텔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노새의 몫. 자동차 문화에 익숙한 관광객들에게는 그마저도 이색적인 볼거리여서 저마다 호텔 창문에 매달려서 사진을 찍어댄다. 섬의 남단에는 작가와 화가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데, 대도시의 화상과 출판사들이 그들의 작품을 구입하고 작품을 출간하기 위해서 이 섬으로 몰려든다. 체류형 관광은 그런 것이다!
이드라는 도시 문명의 편리함과 빠른 속도를 포기하게 하는 대신, 도시에서 못 누리는 여유와 자연과 느림을 선물한다. 도시인들은 '다름'에 매료된 나머지, 해마다 이 섬을 찾아 장기간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즐길 뿐 아니라,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는 이 섬의 '치명적인 매력'에 대해 침을 튀기면서 이야기를 한다. 자발적인 홍보대사가 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관광객들도 달라지고 있다
비양도의 자연 생태적인 아름다움, 비양도 해녀와 어부들의 독특한 문화도 이드라의 매력 못지않다. 다만 제주도가 비양도를 '멋지게' '우아하고' '특별하게' 여행자들에게 홍보하지 못했고, 한국의 관광문화 역시 눈에 번쩍 뜨이는 볼거리만 찾는 '주마간산식 관광' 패턴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다. 국내 관광객의 여행 경험이 풍성해졌고, 의식 수준도 높아졌다. '별 특별한 볼거리도, 눈이 번쩍 뜨이는 시설물도 없는' 제주올레 길에 최근 2년간 쏟아진 관심에서도 이런 변화를 엿볼 수 있다. 눈요깃거리와 즐길거리만 찾던 '빠른 관광'에서 느끼는 관광, 체험하는 관광, 머무는 관광의 '느린 관광'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서서히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제주올레길이 '한국의 산티아고길'로 떠오르고 있듯이, 비양도가 '한국의 이드라'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