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의 아침. 짙게 끼었던 안개가 걷혀가는 중이다. 단동과 신의주를 잇는 철교가 어렴풋이 드러나고 있다.
이덕림
한반도와 중국 대륙을 가르는 경계, 압록강. 저 멀리 백두산 천지의 물을 담고 온 압록강이 여름의 한 가운데를 흐르고 있습니다. 장장 2천리에 이르는 그 흐름의 하단부엔 양쪽의 최대 변경도시 단동과 신의주가 마주보고 있습니다.
단동 생활 4년. 먼동이 트기 전, 눈을 떠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창밖의 압록강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압록강 옆에서 네 번째 여름을 보내면서 시나브로 몸에 밴 습관입니다.
여름날 아침의 압록강은 항상 안개 속에 묻혀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좀 더 멀리 옮기면 엊저녁 잠들 때까지 작은 불빛들이 반짝이던 강 건너 신의주가 희뿌연 환영(幻影)으로 다가옵니다. 강둑을 따라 줄지어 늘어선 미루나무들만 신기루마냥 어렴풋한 윤곽으로 어른거릴 뿐입니다.
여름 압록강은 '안개의 강'입니다. 겨울 압록강이 끊임없이 북풍(北風)을 실어 나르는 '바람의 강'인 것과 달리. 안개에 묻힌 압록강은 흐름을 멈춘 듯 조용합니다. '혁명군처럼 밤새 소리 없이 진주해 온' 안개에 점령당한 무중대하(霧中大河)는 대하무성(大河無聲) 그대로 정적 속에 묻혀 아침을 맞습니다.
안개는 아침 해가 차츰차츰 동녘을 붉게 물들이면서부터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흩어지기 시작합니다. 안개를 쫓는 햇살은 위화도 너머로 멀리 보이는 민둥산 위로부터 비쳐오기 시작합니다. 짐작컨대 함경북도 의주군 어디쯤에 속하는 이름 모를 산 입니다.
안개가 걷히면서 압록강이 유장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멈춰있던 것만 같던 흐름이 다시 일렁입니다. 햇살을 받은 물결이 수많은 은빛비늘들로 변합니다. 하루 두 차례 역류하는 강물 위에 부서지는 햇살은 더 한층 눈부시게 반짝입니다. 서해의 만조가 밀물을 몰고 올라오면서 은파(銀波)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은파를 따라 한 무리의 갈매기도 따라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