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봉 소믈리에에게 마셔보았던 와인 중 최고의 와인을 물었더니, 82년 샤또 라뚜르를 꼽았다. 어느 요소 하나도 튀지 않는 완벽한 균형감과 거의 1분 이상 이어지던 피니쉬를 그 이유로 꼽았다.
김진수
- 와인 종류가 워낙 많다 보니 마트나 숍에서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초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와인 입문 요령이 있다면?"스위트한 맛은 모든 사람이 좋아한다. 일단은 스위트 화이트 와인으로 시작하고 단맛이 없는 드라이 화이트 와인, 레드와인 순서로 와인을 접하는 것을 권한다. 레드와인은 혀 양끝을 떨떠름하게 만드는 탄닌 때문에 바로 접할 경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팁은 저렴하지만 맛 좋은 와인을 찾는다면 '신세계' 와인을 공략하라는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전통적으로 와인을 생산해온 유럽국가들을 구세계(Old world)라고 하고 미국, 칠레, 아르헨티나,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처럼 최근에 와인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나라를 신세계(New world)라고 한다. 신세계에서 만든 와인들은 대중적인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와인을 만들기 때문에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고 초보자들이 접하기에 좋다."
- 작년에 참여한 와인 소믈리에 대회를 보니까, 유명 산지의 와인뿐만 아니라 일본과 국산와인, 사케와 심지어 물까지 테이스팅을 하더라. 소믈리에가 그런 것까지 감별하나?"요즘의 경향은 소믈리에가 와인전문가가 아니라 음료전문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믈리에는 와인뿐만 아니라 위스키나 보드카 같은 주류나 각 나라별 전통주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도 국내 소믈리에 대회에 나가기 전에 국산 와인과 수입되고 있는 생수를 구할 수 있을 만큼 구해서 며칠 동안 집중적으로 시음을 하기도 했다. 물맛에도 미묘하지만 밀도감과 미네랄에서 제품마다 차이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와인 애호가라는 사람들 중에는 유난히 와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주, 맥주는 그냥 즐기면서 와인만 유독 외워야 할 것이 많은 까닭은 무엇인가?"와인이 참 어렵다. 그건 이런 예를 들고 싶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맛있는 생선이 뭐냐'고 물었을 때, '전남 영광 법성포 굴비다'고 대답하는 경우다. 한국어를 안다고 해도 생선 종류와 우리나라 지역을 모르면 암호같은 이야기다.
와인이야말로 대표적인 지역 특산물이다. '프랑스 와인 뭐가 맛있나'라고 말한다면 '보르도 뽀이약 와인이다'라는 답변이 주로 나올 것이다. 프랑스 와인 산지를 모르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다. 제대로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와인의 다양한 지역과 품종을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사실 필요하다."
"여기서 제일 맛있는 와인을 달라는 손님, 난감하죠"- 호텔에서 와인을 서비스하다 보면 많은 에피소드가 있을 듯하다. 많은 고객들을 대하다 보면 난처한 상황이나 황당한 경우도 있을 듯한데.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손님을 꼽자면 '여기서 제일 맛있는 와인을 달라'고 말하는 손님들이다. 이런 경우에는 몇 가지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와인을 추천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 손님이 어떤 와인을 드셨는지, 특별히 좋아하는 와인 스타일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식사와 잘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한다. 가격에 민감한 고객에게는 'O만원대 와인으로 맞출까요'라고 의향을 물어본다.
또 다른 에피소드라면 고객 중에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데, 종종 선물로 받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의 이름을 알려주면서 '샤또XX라는 와인인데, 얼마 정도 하냐'고 묻는 경우가 있다. 보르도에서 생산되는 와인이 5000종이 넘는다.
소믈리에가 그 모든 와인을 알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런 분들께는 '라벨에 그랑크뤼 클라세(Grand Cru Classe)라고 적혀있는지 먼저 확인해 보라'고 얘기한다. 보르도 와인의 와인등급으로 총 61개 와인에 대해서만 그랑크뤼 클라세를 표시할 수 있어 이 표시가 있다면 고급와인이다."
- 그런데 사실 호텔은 서민들이 일상적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와인 초보자들에겐 와인메이커스 디너와 호텔에서 진행하는 와인시음회 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권한다. 보통 와인을 잘 모를 경우 이런 행사에 참석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만 참석해 보면 시음행사가 얼마나 알차고 경제적인지 알 수 있다.
이런 행사는 와인을 수입업체에서 협찬을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식사비에 1만~2만원 정도만 추가하면 5~7종의 좋은 와인을 시음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특히 와인메이커가 직접 방문하는 행사라면 와인에 대한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볼 수 있어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될 것이다."
- 최근에는 덜하지만 한때 <신의 물방울>이라는 만화책이 크게 화제가 됐다. 이 만화 때문에 와인에 입문한 사람이 크게 늘었다고 하는데 현장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 있나?"그렇다. <신의 물방울>에 보면 주인공이 디켄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디켄팅은 와인 속의 침전물을 제거하거나 강건한 와인을 부드럽게 하려는 것인데, 사실 디켄팅이 필요한 와인은 많지 않다. 한창 <신의 물방울>이 인기를 모을 때는 여덟 테이블 중 절반 이상이 디켄팅을 요구해 놀란 적이 있다. 물론 그 와인들은 주로 미국과 칠레 와인으로 디켄팅이 필요없는 와인이었다."
- 마지막으로 와인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와인을 한마디로 표현하라고 하면 단순한 술이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얽혀있는 문화적 술이다'고 말하고 싶다. 와인에 빠져들게 되면 자연스럽게 세계지리나 역사, 자연과 문화에 눈 뜨게 된다. 와인을 접하기 전에는 내 머릿속에 세계지도가 없었다. 지금은 뉴스에서 남미나 유럽 얘기가 나오면 귀가 번쩍 뜨인다.
또 와인을 접하다 보면 음식에 대한 관심도 생길 수밖에 없다. 요리를 알면 이 역시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식의 폭이 넓어진다. 와인을 알게 되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많은 지식을 쌓았고 또 최고 전문가가 되기 위해 수많은 책을 보게 되었다. 이런 점이 다른 술이 따라올 수 없는 와인만의 매력은 아닐까. 내가 와인을 알게 된 것이 대단한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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