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가족단위의 조문이 많았다.
정찬일
경기도 과천시에서 이런 말하면 90% 이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과천정부중앙청사 이전 반대!"
이전에 따른 지역 경제의 손익계산 결과가 마이너스여서만은 아니다. 정부종합청사는 과천을 상징하는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이 아이콘을 정면으로 건드렸다. 지역의 반발이 안 일어날 수 없다.
게다가 재건축에 대한 각종 규제정책으로 참여정부를 향한 집주인들의 원성은 하늘을 찔렀다(MB 정권이 들어선 후 땅값은 회복이 되었다). 그리고 2009년 5월 23일 새벽, 이곳에서 환영받지 못했던 그가 생을 마감했다. 그것도 아주 비극적으로.
25일 저녁, 과천 중앙공원에 분향소가 차려졌다. 관제가 아닌 민간 분향소다. 나름대로 시민단체의 활동이 비교적 활발한 지역임을 감안할 때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은 것도 이런 지역 정서를 반영한 것일까?
대한민국 전체를 슬픔의 도가니로 몰아놓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이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분향소를 찾았다. "지켜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영원히 사랑합니다" 문구의 현수막, 작은 듯 싶은 천막 안에 웃는 영정사진을 중심으로 하얀 국화꽃이 놓여있었고 향냄새가 진동했다. 그 옆으로 추모의 글을 쓰는 책상과 고인의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곳이 마련돼 있었다. 분향소 모습은 다른 지역과 차이가 없었다.
다른 지역 분향소와는 달리 '약간 썰렁하지 않겠나'라는 예상은 금방 빗나갔다.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 대부분은 저녁 식사 후 산책이나 운동을 하러 나왔다가 분향소를 '발견'한 사람들이다. 운동복 차림인 사람들이 하나 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고, 그 줄은 저녁 내내 끊기지 않았다. 자전거를 타던 사람들도, 학원에 가던 학생들도, 바삐 퇴근길을 재촉하던 사람들도, 알콩달콩 데이트를 하던 이들도 모두 멈췄다. 그렇게 한 명 한 명이 모여 긴 줄을 이뤘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차림새와 구성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공원에 차려진 분향소를 발견하곤 집으로 가 까만색 조문복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온 이들도 많았다. 역시 동네 분향소답게 가족단위 조문객이 주를 이뤘다. 소리 없는 울음들이 영정 앞에서 쏟아진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들 눈은 생경하다는 투다. 추모의 글을 적는 책상도 비좁았다.
이리 저리 밀리던 분향소 설치, 시민이 나섰다
그러나 이 민간 분향소가 차려지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국민장으로 결정된 만큼 일부 시민들이 시청에 분향소 설치를 요구했지만, 관계 공무원은 "저희들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했다. 한나라당 출신이 시장에 있는 곳이었기에, 예상했던 답이었다. 그래도 옆 동네 안양은 시청에서 분향소를 차려 일말의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성격 급한 변경섭(44)씨와 박종수(40)씨가 시청으로 달려갔다. 공무원들의 답변은 여전히 궁색했다.
그들이 "그럼 내가 개인적으로 분향소를 만들겠다"고 제안했는데, 이번에는 공원 점용허가가 발목을 잡았다. "윗선의 결정"이라는 말과 함께 분향소 설치 문제가 이 부서 저 부서로 넘겨지기 바빴다. 박종수씨는 공무원과 싸우고 뛰쳐나갔다. 그러나 "끈질기면 이긴다"고, 결국 점용허가신청서를 작성하고 바로 승인을 받았다.
"처음에는 막막했어요. 급한 대로 텐트와 국화, 사진을 구해 초라하게 차려놓고 혹시 뻘줌하지 않을까 했는데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조문할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거 내가 큰일을 저질렀구나' 싶더라구요.""혹시 노사모 아니냐?"라는 조심스런 질문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에게 '분향소를 차리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라는 지극히 형식적인 질문은 하지 못했다. 이렇게 일이 커지자 변경섭씨는 결국 직장에 일주일짜리 휴가서를 내야 했다.
그들은 '사비가 40여만 원 들었다'고 솔직하게 공개 고백을 한 뒤 모금함을 만들었다. 모금함은 금방 채워졌고 조문에 필요한 물품들도 속속 도착했다. 이들은 금요일 새벽 0시까지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인데, 이 기간동안 자원봉사를 해줄 사람들도 정해졌다.
"난 보수지만 노 대통령이 '희망' 준 건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