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국립대한민국관 건립위원들과 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왼쪽부터 황석영(소설가), 김종규(박물관협회 명예회장), 이명박 대통령, 김진현 위원장(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청와대 제공
그런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면서, 그가 언론을 통해 피력한 발언은 논리적으로도, 작가의 존재근거라는 점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언론인터뷰를 통해 '용산참사'를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라고 간단히 정리하고(공권력의 진압와중에 인명이 살상된 사태를 단지 '실책'으로 볼 수 있나), 광주민중항쟁의 비극을 "광주사태"로 명명한 후 "그런 과정을 겪으며 사회가 가는 것이고, 큰 틀에서 어떻게 가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 대처정부 시기에도 시위 군중에 발포에 30~40명이 죽었지 않느냐, 프랑스도 마찬가지 아니냐는 진술도 보태졌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최재천 전 의원이 이미 적절히 지적한 바대로, 사실과도 부합하지 않는 것이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독재권력에 의해 자행된 엄청난 비극을 그가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자못 대범한 척 싸늘하게 발언하고 있는 모양새다.
작가라고 하는 자가 국가폭력에 의한 자국민 학살을 "큰 틀"에서 보자고 역설하는 이 비인간적· 몰역사적 상황은 인간성 말살의 '실용주의'적 태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가 광주항쟁의 르포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작가이고, 광주항쟁 당시는 물론 지금도 집회현장에서 자주 불리워지는 <님을 위한 행진곡>의 그 비장한 가사를 백기완 선생의 시를 개사해 작사한 당사자라는 사실이 진실이라면, 그는 지금 개인사와 역사 모두를 깡그리 부정하고 있는 셈이다.
"큰 틀"이라는 그의 표현에서처럼, 황석영은 자신의 기묘한 주장을 피력하는 대목에서는 항상 '거대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기를 즐긴다. <경향신문> 2009년 3월 17일자에 실린 '남북 막힌 혈로 뚫고, 이념정쟁 탈피, 백년대계 세워야'라는 인터뷰를 보면, 6.15 공동선언조차 20년 전 방북 당시 그 자신의 노력에 의해 가능해진 것처럼 회고하고 있는 발언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이는 황석영 개인의 주관적 몽상에 불과하다.
위험한 구상 '몽골연합론' "큰틀"을 좋아하는 황석영은 이번에는 돌연 "몽골+2코리아"라는 '몽골연합론'을 제시해 논란을 깊게 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를 "알타이 경제·문화 연합론"으로 말하고 있기도 한데, "혈연적 연합"이라는 설명이 눈에 띈다. 이런 기묘한 연합을 왜 하는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본과 중국과 같은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이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남한과 북한의 경제발전을 위해서 몽골과 중앙아시아의 식량과 자원을 활용하고, 남북한의 노동력을 활용해 몽골과 중앙아시아를 '개발'함으로써, 선진국으로 우리가 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큰 틀"에서의 '몽골연합론'은 매우 위험한 구상이다. 일단 이 연합의 의도가 드러나는 한 중국과 일본에 의한 한반도에 대한 견제와 갈등은 가중되어, 가뜩이나 심각한 동북아의 패권을 둘러싼 긴장은 더욱 극대화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을 '선진화'한다는 미명 아래,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아류 제국주의적·신자유주의적 광기가 더욱 확대될 것이며, 의도와는 반대로 남북한의 노동조건은 현재보다도 더욱 형편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것이고, 이는 결국 자본의 배만 부르게 하는 것과 동시에 한국의 국가성격을 아류 제국주의적 성격으로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삽질경제'의 아시아적 확대이자, 한국발 아류제국주의의 체제화에 불과할 뿐이다.
동시에 "혈연 공동체" 운운하는 발상 자체가 이미 파시즘의 징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도 일본의 군부와 결탁한 산업화 세력은 조선과는 혈연적 친밀성을 강조하는 한편(이른바 '동조동근론'), 중국·대만·만주에 대해서는 '동아연맹론'이라는 경제·문화공동체론의 외피를 쓴 침략논리를 제창했다. 물론 그것은 위장된 침략논리였다. 표면적으로는 근대화에 미달된 국가와 민족을 해방시켜 일본과의 연합을 통해 문명화하겠다는 것이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주장이었지만, 이는 일본의 천황제 파시즘을 강화시키는 것과 함께, 제국주의적 노동·상품시장의 확보를 요구하는 산업자본의 요구를 충족시키겠다는 파시즘적 야욕의 산물이었다.
내게 황석영이 "큰 틀"에서 주장하고 있는 '알타이 문화연합'이라고 하는 것 역시 그런 제국주의-파시즘적 사유의 뒤늦은 한국적 재현이자 아류로 보인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공안탄압' 앞에서 중도 말하는 중견작가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황석영은 '국가주의자'에서 '제국주의자'라는 더 나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가 남북한의 평화를 말하고, 알타이 문화의 동질성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이란 철저하게 '자본의 이익'과 관련된 것뿐이라는 점이 이를 증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