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과 제도적해결(사)한국성폭력상담소
▲ 성폭력과 제도적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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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여성인권단체, 성소수자인권단체에서는 성폭력과 관련된 형법 개정을 주장해왔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성적자기결정권’의 침해여야 하며, 그에 따라 강간이라는 범죄 역시 ‘여성의 몸이 속한 남성 가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개인의 성적 자존감’의 침해로 변화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간죄 구성에 있어 피해자는 부녀에서 ‘사람’으로 변화해야 하며, 피해 구성 요건도 ‘여성의 질’ 뿐만 아니라 구강이나 항문, 남성의 성기 뿐만 아니라 다른 이물질의 삽입도 강간죄 성립의 조건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비교법으로 보아도, 성적 자존감에 대한 침해를 만들어내는 기준은 대체로 “신체 삽입”에 기준을 두고 있다. (이호중 <성폭력 형법 개정안의 주요 내용과 쟁점>(2007), 여성인권법연대 <성폭력관련 형법개정안 공청회>)
독일 형법은 “성행위”를 성폭력의 기본 행위 개념으로 설정하면서, “성교 또는 신체삽입과 연관된 유사성교행위”에 대하여 가중처벌하는 규정체계를 두고 있다. 프랑스형법은 강간을 “사람에 대한 성적 삽입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으며(제 222-23조), 미국의 주법도 대체로 "sexual intercouse"를 구강성교와 항문성교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고, 뉴저지주 형법의 “sexual penetration"이라는 개념은 독일의 신체삽입행위와 거의 같다.
강간죄 구성요건은 피해자들의 경험 통해 다시 구성되어야
법적으로 강제 추행이 강간보다 처벌의 정도가 약하다면, 그 이유는 ‘여성의 질에 남성 성기가 강제 삽입된 것이 (다른 어떤 행위보다) 끔찍하기 때문’이라는 ‘사회통념’ 때문이 아니라, 신체 삽입이 이루어진 성적 침해가 신체 삽입이 배제된 성적 침해에 비해 개인의 성적 자존감을 더 중대하게 침해한다는 피해자들의 경험 근거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이는 국가가 ‘강간’죄를 처벌해야하는 이유, 강간죄의 보호 법익이 무엇인지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장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을 하면서 만나는 피해자들은 성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고통과 분노를 호소한다. 피해의 내용은 그야말로 피해자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피해 상황, 가해자와의 관계, 피해 전후 주변인의 반응, 피해 이전부터 ‘성(sexuality)'에 대해 갖고 있었던 생각, 자라온 환경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자신의 성폭력 피해에 대해 상담하고, 법적 절차를 밟기 시작하는 피해자들은 자신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상담소라는 여성인권단체로부터, 그리고 국가 기관으로부터 넓게는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기 원한다.
국가 기관에 자신의 피해를 호소함으로써, 가해자의 가해 내용에 걸맞은 처벌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이 때 문제가 생기는 순간은, 개인의 피해 내용이 사회 통념이나, 기존 법체계에 수렴되지 못하는 순간이다. 법이 개인 경험을 배제하는 이유가 이 사회의 성차별적인 편견이라고 한다면, 법 자체는 ‘보편적 정의’의 차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트랜스젠더 강간죄 유죄 판결은 ‘부녀’로 강간의 객체를 한정하고 있는 ‘법’의 기존의 해석보다, ‘여성’으로 자신의 성별 정체성을 갖는 사람의 경험에 귀 기울고 있다는 점에서 기쁜 판결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강간이라는 범죄가 ‘여성의 정조’ 침해가 아니라 ‘개인의 성적 존엄성에 대한 침해’임을 사회적으로 환기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여성의 정조’를 대체할 만한 강간죄의 보호법익으로서 ‘개인의 성적 존엄성’ 침해의 내용, 성적 자기결정권의 내용을 가시화하려는 사회적 관심과 노력, 연구 작업 역시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폭력 문제가 성별 질서와 가부장제도에서 비가시화된 개인들의 경험을 공적 영역으로 끌어오는 계기가 되고, 그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공동체의 문제임을 모두 상기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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