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마사 사리노그애칭 로라 마싱으로 잘 알려진 트마사 사리노그 할머니의 생전 모습
헌법 9조 뮤지컬 실행위원회
로라 마싱, 그 아픈 생애2006년 5월, 내게 한국어를 배우는 한 주부가 뮤지컬에 출연한다며 전단지를 내민 적이 있다. 제목은 <소년이 있어>. 나가사키 원폭을 다룬 작품이었다. 일반시민 100명이 출연하는 이 시민 뮤지컬은 당시 일본 내의 헌법개정 움직임을 우려해 일본의 헌법 9조(전쟁을 하지 않겠다는)를 지키자는 뜻을 담고 있었다.
야마나시현 고후시에서 단 1회의 공연이 예정되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관객이 넘치는 바람에 갑작스레 공연을 2회로 늘려야 했다. 낮과 밤 공연을 합쳐 2600명의 관객을 동원하면서 그 해의 시민 뮤지컬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그로부터 2년, 그녀가 또 다시 내게 전단지를 내밀었다. 이번엔 위안부 문제를 다룬 <로라 마싱 이야기>란 뮤지컬이었다. 전부터 의아했다. 이렇게 좁아터지고 별 볼 일 없어보이는 지방에서 어떻게 일반시민 100명을 모아서 뮤지컬을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일본 내에서 별 관심을 끌지도 못하는 '헌법 9조' 얘기를 가지고 관객을 동원할 수 있는지 말이다. 더욱이 이번에는 오사카, 도쿄, 고후의 3개 도시에서 12회의 공연을 한다니 더욱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8년 5월 24일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강연과 공개 연습에 참석했다. 필리핀에서 줄곧 로라 마싱을 지원해 온 수잔 마카부아그씨가 강연했다. 출연자들과 참가자들은 위안부 문제와 로라 마싱에 대해 이해를 넓히는 기회를 가졌다.
로라 마싱은 일본군 위안부였던 트마사 사리노그 할머니의 애칭이다. 로라 마싱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13세에 눈 앞에서 일본군의 칼에 아버지마저 여읜 후 2년간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가 되었다. 일본군에게서 풀려난 이후엔 결혼을 마다하고 재봉으로 생계를 이었다. 1992년 위안부였던 사실을 세상에 밝힌 후 1993년 도쿄지방재판소에 제소하고, 2000년에는 여성국제전범법정에서 증언했다. 또 2001년에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을 거부하는 등 인간존엄과 정의회복을 위해 일본 정부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해 왔다. 2007년 4월 7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