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중인 안수찬 기자예비 언론인들에게 내러티브 저널리즘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해곤
독자들이 신문을 떠나고 있다. 구독률이 1996년 69.3%에서 2006년에는 40.0%로 10년간 약 29% 하락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주요 포털사이트와 각 신문사 홈페이지를 통해 쉽고 빠르게 뉴스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떠나는 독자들을 붙잡기 위해 신문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는 기자가 있다. <한겨레신문>의 안수찬 기자다.
안 기자는 신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기사 장르, 그 자체를 혁신하라’고 말한다. 오늘날 한국 신문 기사의 지배적 장르인 ‘스트레이트’ 스타일을 넘어 새로운 장르인 ‘내러티브’ 스타일로 옮겨가자고 제안한다.
왜 논픽션 내러티브 저널리즘인가?
그에 따르면 현재 한국 신문의 90%는 스트레이트 기사다. 스트레이트는 사실 만을 압축적으로 전달하는 글쓰기 방식으로, 지금까지 가장 객관적인 보도 형태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스트레이트 기사는 한편으로 복잡한 사회 현상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늘 있어왔다. 그래서 보다 심층적인 정보를 원하는 요즘 독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자의 관점에서 보면, 스트레이트는 매우 정형적인 틀에 맞출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창의적 재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다. 이는 곧 스트레이트가 기자들의 자기계발 동기를 부여하는 힘이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안 기자는 “한국 신문이 스트레이트 기사를 계속 고집하면, 결국은 독자로부터 멀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수찬 기자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논픽션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제시한다. 논픽션 내러티브 저널리즘, 즉 이야기 기사는 현재 저널리즘을 장악하고 있는 정교한 ‘스트레이트’체가 효과적인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된 새로운 패턴의 글쓰기다.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사건의 진실을 심층적으로 전달함과 동시에 기자 개인의 창의적 재능까지 끌어 올릴 수 있는 새로운 기사체 모델이 바로 이야기 기사다.
이야기 기사란 이런 것이야기 기사는 미국에서 많이 채택하고 있다. 미국 언론의 신문 구독자 조사 결과 대중들이 스트레이트 기사보다 이야기 기사에 더 주목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기자들은 이야기 기사에 집중하게 됐다. 이야기 기사는 피처 스토리에서 더 확대된 장르다. 피처스토리가 개인의 일을 사회와 결부 시킨 기사라면 이야기기사는 보다 복잡한 사회 현상을 소설처럼 다룬다.
내러티브 이야기 기사는 네 가지 큰 특징을 갖는다.
첫째,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주목한다. 세계는 사건이 아니라 인물의 총체이며 인물을 통해 사건을 더욱 잘 설명할 수 있기에 인물로 사건과 사회현상을 끄집어 낼 수 있다.
둘째, 설명보다는 묘사를 통해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 독자는 설명이 아닌 재현된 상황을 통해 객관적인 입장으로 사건에 접근한다.
셋째, 소설같은 플롯 구조로 갈등의 탄생부터 절정과 해소에 이르는 과정 전부를 드러낸다. 사건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읽는 기사가 아니라 보는 기사를 구현한다. 문자를 읽어 정보를 취득하게 하는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전략을 거부하고 픽션의 편집 기법을 차용한다.
안수찬 기자는 자신이 가장 으뜸으로 친다는 이야기 기사를 한편을 소개했다.
몇 년 전, 쿠바 관타나모 기지에서 알 카에다 포로들을 상담했던 ‘제임스 이’라는 미군 이슬람 목사가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고발된 사건이 미국 <워싱턴타임스>에 특종 보도된다. 과거 제임스 이를 취재한 적이 있던 <시애틀타임스>의 리베라 기자는 이 사건에 의심을 품고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다. 1년 6개월동안 이 사건을 심층 취재한 리베라는 총 10편의 이야기 기사를 연재한다. 기사는 각 편마다 이 사건에 얽혀 있는 각기 다른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모든 이의 입장을 대변한다. 이렇게 탄생한 ‘제임스 이 스토리’는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했다.
낯익고 낯선, 기자의 작가주의이러한 이야기 기사는 기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기자의 일생을 살펴보자. 수습부터 4년까지 노동을 숙련한다. 적당히 숙련된 5년차 기자는 자신의 경로를 모색하고 9년차부터 치열한 승진 경쟁을 한다. 15년차쯤 되면 데스크에 있거나 이름을 날리는 전문기자가 되거나 이도저도 아닌 땜질기자로 버티다가 21년차가 넘어가면서 은퇴 압력에 시달린다.
스트레이트 기사가 주를 이루는 한국 신문의 특성상, 기자들은 왜 전문성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지 못했고, 자기 계발에 소홀했다. 하지만 이야기 기사라는 새로운 장르는 현장의 작은 모티브에서 출발해 깊이 있는 사회 문제를 다루기 때문에 기자들의 현장감각과 글쓰기 능력이 강하게 요구된다. 이야기 기사는 기자의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