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박산성, 이거나 받아랏!길을 막고 있는 컨테이너에 손팻말을 붙이는 시민들
고승정
앞뒤가 없었다. 위아래도 없었다. 어디가 중심인지 알 수가 없다. 각자 자기 편한 대로, 앉아 있고 서 있고 노래하고, 제멋대로다. '일사불란'한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까 본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앞뒤에 붙인 오용석(54) 개방과통합정책연구소장은 촛불집회에 몇 번 참가해 10대들의 모습을 본 뒤 아고라 댓글부대로 활동했다.
기성세대가 잘못했기 때문에 10대들이 나서게 된 것이 미안하다면서, "철저히 원자화 · 분자화한 10대들이 촛불을 들고 나섰기 때문에, 잘못한 기성세대도 참여해 하나될 수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예뻐요"라고 말하며 흐뭇하게 웃는 그의 눈이 반달모양이 됐다. 등 뒤에서 "저 고2입니다"라는 자유발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퍼졌다.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함성이 들렸다.
시계는 밤 1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젊은 남성 2명이 서로 끌어안고 있었지만, 눈을 흘기는 사람은 없었다. 무지갯빛으로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성소수자에게서 나온다'라고 쓴 팻말이 보였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비정규직에게서 나온다'는 팻말도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휠체어 행렬이 도착하자 비정규직 팻말을 든 청년들이 달려가 그들을 안았다. 인도에 앉아 있던 시민들도 환호를 보내며 뒤늦은 손님을 환영했다.
그 사이에서 61살 독일 남성을 만날 수 있었다. "신분상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위치에 있으면서 촛불집회에 5번이나 참가한 이유를 묻자 분위기가 좋아서란다. 시위 참여가 10대들에게 나쁘다고 생각하는지 묻자, "Nein, nein, nein, nein"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한국인 아내가 통역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68세대'인 그는 "그때 학생들이 데모하면 시민들이 '니들은 노동수용소에 보내야 돼'라며 욕했는데, 지금은 시민들이 같이 참여한다"며, 10대 참여가 아주 좋다고 말했다. "68세대 자식들이 너무 정치의식이 없어서 애들을 잘못 키웠나 했는데, 90년대 걸프전 때 학생들이 먼저 (거리로) 나갔다"며, 5월 초에 교복 입은 학생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떠올린 기억도 풀어놓았다. "학생들이 먼저 나가고 그걸 보고 시민들이 동참하는 게,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상징 같대요." 아내가 들떠 있는 그의 말을 전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