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클론 속에 병원 지킨 '당가' 간호사의 눈물

[미얀마 의료단 5신] 최대 피해지역 달라에서 진료하다

등록 2008.05.15 08:39수정 2008.05.1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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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는 어쩌나" 미얀마 곳곳이 여전히 물에 잠겨 있다. 올 농사가 걱정이다.
"모내기는 어쩌나"미얀마 곳곳이 여전히 물에 잠겨 있다. 올 농사가 걱정이다.그린닥터스

5월 11일  FMI지역에 들어가서 진료를 했습니다. 그 마을은 강가에 인접해 사이클론 피해가 큰 지역이었습니다. 교회를 빌려서 오전 오후 진료를 하였는데,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습니다. 진료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이제 이곳 미얀마의 날씨에 조금 적응이 되는지, 땀은 많이 줄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모두 무더위에 지친 기색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니, 마치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 같이 체력소모가 큽니다. 식사를 해도 금방 배가 고프고, 에너지 소모량이 많은 것 같습니다.

5월 12일은 피해가 너무 커서 군부에서 외국인 통제를 철저히 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달라섬으로 향했습니다. 어제 저녁회의와 오늘 아침회의에서도 달라섬 봉사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안전이었습니다. 달라섬의 달라크리닉은 한국인 I 선교사가 세운 곳인데, 미얀마 내의 외국인 진료소로 허가가 난 유일한 곳입니다.

두 달 재정난으로 운영이 어려워서 문을 닫고 있었으나, 간호사는 이번 폭풍에도 병원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누가 건물의 목재나 문을 떼어갈까 걱정이 돼서 사이클론 때부터 줄곧  병원에서 잠을 자고 지키고 있었다고 합니다. 간호사의 행동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정원의 호수가 아니에요" 교회가 물속에 잠겨 있다. 주변에서는 뱀과 도마뱀 등이 기어다니고 있었다.
"정원의 호수가 아니에요"교회가 물속에 잠겨 있다. 주변에서는 뱀과 도마뱀 등이 기어다니고 있었다.그린닥터스

바로 옆에 있던 교회는 전부 무너졌는데 잔해조차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지안내인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동네 사람들이 무너진 교회의 폐 건자재를 모두 가지고 가서 자기 집을 보수하는데 썼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도 달라클리닉의 간호사 당가는 끝까지 병원을 지켰으며, 우리 일행이 달라섬으로 들어가는 절차도 모두 준비해 주었습니다. 그녀는 동네의 통장은 물론 경찰한테도 우리의 출입에 대한 허가를 받아냈습니다. 나중에 우리 일행이 3시간동안 차를 타고 달라클리닉에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달려 나와 허가상황 등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 간호사의 모습에서 미래 미얀마의 밝은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자체회의에서 지역 보안관계자로부터 허가를 얻었다지만 달라섬으로 가는 길에 곳곳에서 경찰과 군인이 지키고 있으니 이런 허가는 아무 쓸모가 없지 않느냐는 문제가 제기돼 우리의 회의는 좀체로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모두 목숨에 대한 문제제기이니 가타부타를 할 수 없었던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은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달라섬은 특히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다. 일단 달라섬에 가는 것을 시도라도 해보자"는 K 선교사의 당부에 우리 일행은 가고 싶은 사람만 가자며 달라섬으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우리는 보안문제 등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긴 의사 4명(정근, 김정용, 김창수, 안유정)과 K, C씨 등 현지한국인 2명, 미얀마의사 자와랏트, 현지사역인 1명 등 모두 8명이 택시 2대를 타고 조심스럽게 이동했습니다.

양곤에서 남서쪽으로 향했습니다. 달라섬으로 가는 주변 상황은 비참하였습니다. 비포장과 포장도로를 지나면서 주변의 집들과 나무는 반 이상이 파괴되어 있고, 많은 지역이 아직도 물에 잠겨 있어 올해 농사가 어떻게 될지 걱정이 앞섰습니다. 가는 중간에 몇 번의 검문을 거쳤지만 경찰과 군인들은 우리를 의심하지 않아 그냥 지나칠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비가 내리면서 빗물로 차창이 가려져 차 안에 누가 탔는지를 쉽게 알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무사히 달라섬의 달라크리닉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약 먹고 나으세요" 달라클리닉에서 진료하고 있는 그린닥터스 안유정 대원.
"이 약 먹고 나으세요"달라클리닉에서 진료하고 있는 그린닥터스 안유정 대원.그린닥터스

당가 간호사는 미리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 일행이 온다는 사실을 알린 모양입니다. 그래서 환자들이 몰려들고 있는데, 그린닥터스 의료단이 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안절부절 하였습니다. 우리 일행이 들이닥치자마자 그녀는 눈물범벅이 되었습니다. 안도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순간 울면서 연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그녀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순간 당황스러웠습니다. 얼마나 의료진을 학수고대 기다렸으면 저렇게 감격스러울까 싶었습니다. 우리 일행도 잠시 그녀의 모습을 보고 감동했습니다. 지역책임자와 보안책임자들이 나와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안도하고 진료에 들어갔습니다.

진료 중에 비가 엄청나게 쏟아졌습니다. 달라병원의 지붕이 지난 사이클론 폭풍에 날아가는 바람에 진료실 내에서도 비를 맞으면서 진료를 하였습니다.


"눈 크게 뜨세요" 달라에서 눈병을 치료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
"눈 크게 뜨세요"달라에서 눈병을 치료하고 있는 필자의 모습.그린닥터스

다행히 동행했던 미얀마의 의사 자와랏트가 이곳에서 두 달 전에 근무를 했던 곳이라 편했습니다. 거기서도 역시 외상환자가 많았습니다. 또 눈에 다래끼가 너무 심해 안와농양으로 발전한 환자가 찾아왔습니다. 눈을 뜰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일행은 이번 봉사길에 짐을 최대한 줄이는 바람에 수술도구를 미처 챙겨 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응급으로 치과용 스케일링기구를 빌려서 농양을 배출했습니다. 고름이 너무 많이 나오자 옆에서 진료순서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놀라며 탄성을 질렀습니다. 안와농양이 심해져 농양이 머릿속으로 들어가면 치명적인데, 이 환자는 다행히 수술로 고름을 배출했고, 항생제투약으로 안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적절한 순간에 그 환자는 안과 의사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아이들은 고열에다 외상 등으로 온몸 곳곳이 곪고 있었고, 어른들도 상처와 고름 등으로 긴급치료를 받아야할 처지였습니다. 이런 응급환자만 100명이 넘었습니다. 모두 치료를 마치고 잠시 한시름 놓고 있는데, 아직 물에 조금 잠겨있는 병원건물의 창밖을 통해 기어가는 독사 한 마리를 보았습니다. 한번 물리면 약도 없는 미얀마독사라고 합니다. 뱀뿐만 아니라 도마뱀 등도 많이 기어 다닙니다.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 관심 밖의 자신들을 치료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온 한국 의사들이 지금 미얀마 사람들에겐 더 없이 좋은 친구로 기억될 것입니다.

당가 간호사는 하루 종일 닫혀 있던 병원 문이 열리고, 동네주민들이 치료를 받는 모습에 감사해하며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병원에는 사원의 스님도, 지역책임자인 오카다도, 경찰도 모두 아픈 사람들에게 오는 의사들을 반겼습니다. 지역책임자는 달라병원을 이제 계속 열어달라고 우리에게 부탁까지 합니다. 이곳의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 부서진 병원을 다시 고치고, 의사를 상주시켜 이들을 돌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나라의 현지 선교사들과 교포 기업인들이 발 벗고 나서리라 확신합니다. 사이클론으로 부서져버린 병원에서 숙식을 해가며 우리 일행이 올 때까지 지켜낸 마이찌 간호사와 미얀마 사람들의 순수성이 계속되는 한 그들은 밝은 미래를 보장받을 것이라고 봅니다.

"주인은 어디 가고..." 미얀마 의 농촌주택은 대개 나무와 대나무 등을 지어져 비나 바람에 비교적 약해 이번 사이클론으로 가장 피해가 컸다.
"주인은 어디 가고..."미얀마 의 농촌주택은 대개 나무와 대나무 등을 지어져 비나 바람에 비교적 약해 이번 사이클론으로 가장 피해가 컸다. 그린닥터스

수 백명의 환자 진료를 마치고,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하루 진료의 피곤함과 안도감으로 귀환하던 중 군인이 우리 일행이 탄 차를 세워 검문했습니다. “당신들은 누구냐? 왜, 왔느냐? 여권을 한번 보자”고 하면서 우리를 윽박질렀습니다. 우리 사진도 찍었습니다. 순간 너무나도 긴장되었습니다. 아, 이젠 추방당하겠구나. 아직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미얀마 사람들이 많은데…. 온갖 상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바로 우리 뒤에 따라 온 서양인은 군인에게 잡혔습니다. 정말 가슴이 쓸어내려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양곤으로 돌아오는데, 이제 곳곳에서 시장이 열리고 전기도 조금 들어왔습니다. 가로등에도 불이 들어오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피해가 큰 지역은 복구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많은 미얀마 사람들이 질병과 식량난으로 죽어갈 것입니다. 이런 와중에 의료지원과 식량배급을 받는 사람은 행운입니다.

이곳에는 요즘 대나무값이 오른다고 합니다. 집을 지을 때, 대나무로 서까래를 만들어 초가집처럼 짓습니다. 대나무를 실은 마차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대나무와 나무로 집을 짓는데 땅값을 포함해서 400만짯 정도 들고, 시멘트로 집을 짓는데 1000만짯 정도 든다고 합니다.

5월 13일은 또 다른 지역의 마을을 찾아갑니다. 지붕들이 몽땅 날아가고 없어진 마을이라고 합니다. 물론 지역책임자의 허락을 얻어야합니다. 5월 14일은 고아원에 갑니다. 거기도 역시 건물의 피해가 많다고 합니다. 도움을 기다리는 손길은 너무 많은데 함께 도와줘야할 협력자가 없어 안타깝습니다. 한국의 의료팀만 들어와서, 현지의 한국인들의 적극적인 동참 속에 어렵게 미얀마 사람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힘들고 지칠 때 우리가 작은 정성이라도 함께 나누면 우리 이웃에게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미얀마를 도와주십시오.

덧붙이는 글 | 평화 구호단체인 그린닥터스(이사장 박희두)가 현지 한국기업인들과 연계해 사이클론 참사를 당한 미얀마 돕기에 나섰습니다. 정근 기자는 그린닥터스 미얀마 긴급의료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평화 구호단체인 그린닥터스(이사장 박희두)가 현지 한국기업인들과 연계해 사이클론 참사를 당한 미얀마 돕기에 나섰습니다. 정근 기자는 그린닥터스 미얀마 긴급의료단 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얀마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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