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 인간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한 선교

테레사 수녀의 일대기 '소박한 기적'을 읽으며

등록 2007.04.29 08:36수정 2007.04.29 08:36
0
원고료로 응원
종교는 왜 필요한 것일까? 종교는 인간을 위한 것일까, 신을 위한 것일까? 이것에 대한 너무 추상적인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뛰어넘는 것이 될 것이다. 먼저 종교를 그것이 일단 긍정적인 것이라고 가정을 할 때, 그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선교는 어떤 방법으로 행하여져야 하고 또한 무엇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가를 생각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책 표지
책 표지위즈덤 하우스
<소박한 기적>은 마더 테레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책이다. 아무리 종교계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테레사 수녀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렴풋이 떠올려보면 평생을 인도에서 가난한 자들과 같이 생활하며 그들의 질병, 기아, 궁핍과 맞서 싸운 가톨릭 선교단체의 유명한 수녀 정도로 알고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녀는 종교인이라기 보다는 월드비전이나 유니세프 활동과 유사한 자선 활동가로 일반인들에게 더욱 친근하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하여 그녀에 대하여 더욱 깊이 이해한 바로는 그녀는 진짜 종교인이었다는 점이다.


만약 테레사가 종교적 신념이 없는 일반적인 열정만을 소유하였다면 거리의 썩은 고양이 시체처럼 환자들이 널려진 인도 빈민가에서 평생을 바친 활동을 하기란 무척 어려웠으리라. 종교인들의 특징인 현실초월적인 사고방식과 절대자인 신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속물 같은 사람들이 보기엔 이해할 수 없는 이런 짓을 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종교인을 자처하고 테레사 수녀처럼 해외 선교나 자선활동을 하려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그러나 그들의 활동은 왜 테레사 수녀처럼 전 세계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것일까? 또 심지어는 왜 다른 종교로부터나 그 지역 사람들로부터 비난까지 받는 것일까? 테레사 수녀의 활동 방식을 통하여 우리 종교인(특히 개신교)의 자세와 선교에 관하여 잘못된 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땅에서는 바야흐로 해외선교 광풍이 일고 있다. 개인적으로 평생을 기독교인으로 살았지만 아직도 이름이 생소한 선교단체들이 발견되는 것을 보면 이 나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노소 선교기간의 장단을 불문하고 전세계 각지로 투입되는 이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선교 국가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면 한국 땅에서 이루어지는 그 선교들은 일반적으로 어떠한 형태를 띄며 무엇이 중심이 되는가를 알아 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테레사 수녀의 삶에서 보여지는 선교활동과 비교하여 어느 것이 더욱 선교의 본질에 가까우냐 하는 것을 다루려 하기 때문이다.

먼저 한국의 해외선교 스타일을 개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선교는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 이벤트적인 성격이 강하다. 전도사와 대학생들이 외국 선교지에 도착하면 일단 노상에서 노래를 하거나 율동을 시작한다. 열심히 갈고 닦은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땅에서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모여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그 사람들 눈에 이해할 수 없는 활동을 시작하곤 한다. 이런 네이티브들의 배타적인 시선은 선교사의 고난으로 생각하며 더욱 열심을 낸다. 이것이 발전하면 거리 행진을 하고 교회에서 잔치를 열고 체육대회를 하는 등 군대에서 배웠던 보여주기식 선교를 제대로 수행한다.

이런 점은 한국적 사고라 생각된다. 급박한 근대화 과정을 거친 한국사람들의 스타일이다. 즉 과정을 중시하지 않고 결과에 직접적으로 도달하려는 모습이 여기에 나타난다. 이런 방식의 선교는 군중들에 대한 개개의 사랑은 고갈된 채 성서의 지상명령인 '땅 끝까지 전파하라'는 목적 달성에만 치중한 느낌이다. 물론 장기 선교사의 경우에는 지역 공동체에서 하는 활동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대학생들의 단기선교는 대부분 이런 형식을 보여준다.


사실 한국 내에서의 전도활동에서도 이런 예는 비일비재하다. 단편적인 것이 지하철에서 요란하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부르짖는 사람들이라고 할까? 이런 방식은 인간 개개인에 대한 사랑은 자취를 감추고 추상적 군중에 대한 시끄러운 외침만 있을 뿐이다. 당연히 이런 전도의 실효성은 상당히 의심스럽다.

그럼 한국적 선교와 비교의 대상으로 삼으려고 하는 마더 테레사를 선교사로 볼 수 있을까? 그녀도 선교활동을 했다. 먼저 그녀는 상당히 신실한 종교인이며 가톨릭의 유명한 수녀이며 그녀의 모든 활동들은 이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녀의 삶 전체를 선교활동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마더 테레사는 어떤 방식으로 선교를 하였길래 그토록 전 세계에 사랑의 파장을 일으켰을까?


어린 나이에 신으로부터 부름 받은 마케도니아 출신 여자아이 테레사는 완전히 인도 사람이 되기로 결정한다. 완전히 선교지역에 흡수되어 그 쪽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그 공동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고 생각한 듯하다. 반면 우리의 선교사들은 한국 국적은 여전히 유지한 채 자신만 그 땅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자녀들은 보다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 따로 보내는 기러기 아빠 선교사들이 많아 보인다. 이런 방식의 선교사가 많다는 것은 선교지는 내 땅이 결코 될 수 없다는 마인드에서 기인한다. 선교지는 전쟁터이고 그 지방 사람들은 영혼구원의 대상일 뿐 내가 그 땅에 완전히 동화되어 그 쪽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이미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점이 여기에서 증명된다.

이런 점에서 테레사의 활동은 선교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선교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지역 공동체의 완전한 일원으로 행동함으로 그 지방사람들의 고통을 함께 하려는 자세 자체가 그 선교지방의 사람들의 마음을 백마디 말보다 더욱 강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다. "행동이 말보다 큰 소리를 낸다." 이것이 마더 테레사의 신조였다. 이런 방식은 한국 스타일의 선교에서 보다 경청할 부분이라 생각된다.

또한 마더 테레사는 비기독교인이 죽기 전에 반드시 예수를 영접하기를 바라는 한국의 선교사와는 달랐다. 죽어가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안락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무슬림에게는 회교도식의 코란을 읽으며 기도해 주었다. 신은 당신의 기도의 형식과는 상관없이 당신의 마음을 받아들이신다는 뜻에서였다. 그녀의 이런 방식은 한국의 일반적인 목사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죽기 전에 반드시 개종시키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이런 구원의 문제에서 그녀는 조금 자유로웠던 듯 하다. 지금 우리 선교사들의 생각으로는 선교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이었다 할 지라도 말이다.

마더 테레사의 전도는 단순하고 명료하다. "당신도 정말 값진 것을 가지고 있다면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을 겁니다. 저는 그리스도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여기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저처럼 그분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하나님이 원할 때 주시는 선물입니다"라고 말한 그녀의 사상에서 그녀가 구원에 문제에 집착하지 아니한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녀는 '신앙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그토록 애가 타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을 개종시키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마더 테레사의 행동에 감동 받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신앞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그러면 종교의 본질 문제로 다시 돌아가자. 종교가 신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을 위한 종교는 일단 배제된다. '내가 하는 행동이 신의 명령이다'라는 생각은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사람을 죽여도 신의 뜻이라면 무조건 적인 면죄부가 될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이에 대한 예를 우리는 유대의 시온주의자들이나 과거 십자군 원정 등의 역사적 사건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교도는 적이며 다만 구원의 대상일 뿐이라는 마인드는 필연적으로 타 종교와의 분쟁의 씨앗을 내재하게 된다. 이런 사상은 오히려 기독교의 본질인 ‘화평케 하는 자’ 의 사상에 모순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모순을 시정하기 위하여 마더 테레사의 활동을 관찰하여 진정한 종교가 지향해야 할 점을 짚어보아야 한다.

"원수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언젠가 우리의 친구가 될 것입니다"라는 마더 테레사의 말은 이런 점들을 쉽게 표현한다. 인간이면 누구나 사랑 받길 원한다는 일반적인 명제에 근거하면 처음과 마지막이 동일하고 변하지 않는 신의 속성을 살펴볼 때 가장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사랑'이라는 특징이 신의 속성이 됨은 당연하다. 그러면 그 신을 전제로 한 종교에서도 이 사랑이 핵심적으로 표출되어야 할 터인데 이것이 현실적으로 그렇지 못한 점이 많다. 말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이해합니다. 당신을 존중합니다"라고 하기는 무척 쉬운 법이다. 그러나 타 종교를 완전히 무시하고 거의 공격에 가까운 전도활동을 펼치면서 우리는 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할 수는 없는 것이다.

테레사는 종교활동을 등한시하여 자선사업만 펼친 것은 아니다. 마더 테레사는 정부에 탄원하여 성당을 여럿 열었다. 또한 이때 얻은 성당부지와 이슬람의 예배당인 모스크도 깨끗하게 청소해서 회교도들에게 넘겨주기도 하였다. 이에 감동한 회교도들은 마더 테레사와 함께 손잡고 지역사회에 봉사하게 되었다. 종교끼리의 화합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선교사의 눈에는 교회 부지를 이교도의 예배당으로 넘겨주는 이런 행위는 거의 미친 행동일 수도 있다. 당장은 그렇지만 테레사 수녀는 인내심이 강한 사람인 듯 하다. 이런 우회적인 방법이 훨씬 효과적으로 그 지방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며 공존 할 수 있다는 것을 간파하였던 것이다. 그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과 말을 하지 않는 것에서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이 시작되기 때문에 이런 순차적인 방법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타인의 종교와 생활 양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면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웃기는 일이 있을까?

테레사 수녀는 세계적인 유명인사였지만 생활 수준은 걸인에 가까웠다. "우리 일에 고통이 없다면 그것은 사회사업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것도 아주 유익하고 즐거운 일이지요.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일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 점은 그리스도가 강조한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즐겁고 편하다면 현실초월적인 종교인이 되기가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피조물이니 말이다. 개척교회 목사로 시작할 때의 뜨거운 열정이 교회가 성장하여 신자가 만 명이 넘었을 때 가지게 되는 목사의 마음과 같을 리 없을 것이다. 큰 교회 목사에게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유명세와 물질적 풍족함 등으로 인하여 인간은 가랑비에 옷 젖듯 저절로 교만해지기 마련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더 테레사의 선교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낮아짐이다. 가장 낮은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테레사는 가난한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가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굶어보지 않은 사람은 굶주리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 상대방의 고통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 그들의 활동은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더 테레사는 철저하게 가난한 생활을 할 것을 수녀들에게 서원시키곤 했다. "우리만큼 먹지 못하는 걸인들도 많습니다"라는 테레사의 말은 자신도 열악한 상황에 있으면서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는 종교적, 인격적 깊이를 보여준다.

테레사 수녀가 조직한 '사랑의 선교회'에서는 그것을 관리하는 하인들이 없다. "우리에겐 종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로서로 종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는 수녀와 수사들이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모두 섬긴다. 이런 시스템이 앞서 말한 풍족해짐으로 인한 인격적 타락을 견제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되는 것이다.

테레사 수녀의 삶의 기록인 <소박한 기적>은 제목 그대로 종교는 그 활동이 거창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작은 작은 것, 소박한 것에서 거대한 기적은 태동한다. 테레사 수녀는 "미소에서 기적은 시작된다"고 말했다. 버려진 아이에 대한 따뜻한 포옹과 굶은 자에게 건네는 빵 한 조각이 조직적으로 심령대부흥회의 광고전단을 뿌리거나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피켓을 들고 외치는 공허하고도 거시적인 방법보다는 훨씬 효과적이다. 따뜻한 눈빛과 타인에 대한 존중이 종교인이 지녀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빠진 선교와 전도는 단지 사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소박한 기적 - 마더 테레사의 삶과 믿음

T. T. 문다켈 지음, 황애경 옮김,
위즈덤하우스, 2005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한 번 씻자고 몇 시간을..." 목욕탕이 사라지고 있다
  2. 2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한동훈 표정 묻자 "해가 져서...", 이어진 기자들의 탄성
  3. 3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천재·개혁파? 결국은 '김건희 호위무사'
  4. 4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나무 500그루 가지치기, 이후 벌어진 끔찍한 일
  5. 5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미 대선, 200여 년 만에 처음 보는 사태 벌어질 수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