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좀 서운했지만, 넋 놓고 서운해 할 처지도 못 된다. 서둘러 눈을 맞췄다. 일찍 지지 않고, 늑장을 피워준 타래난초에게 고마워하며, 땀이 많이 흘렀다. 눈으로 들어갔는데 따가웠다. 그래도 좋았다. 못 볼 줄 알았던 아이를 이렇게 만나고 있으니까.
분홍재롱둥이 한 번 쳐다볼 때마다 내 머릿속을 남은 시간 쪼개기에 바빴다. 오늘 할 일 중에 김치냉장고는 큰 녀석보고 닦아 달래고, 쌀통은 좀 낡아서 잘 닦아야 하는데, 서랍도 부실하니 남편보고 닦고 조여 달라 그러고, 작은 녀석은 빨래를 잘 널고 개키니까 옷장 정리를 좀 해 달래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