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참사로 남편 고 김병철(52)씨를 잃은 최현주(53) 충북인뉴스 기자를 지난 18일 경기도 화성시에서 만났다. 최 기자는 오송 지하차도 참사, 외국인 노동자 산재사망 등 숱한 참사를 취재해온 기자다. 최 기자 눈에 눈물이 고였다.
김성욱
최 기자를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모두누림센터에서 어렵게 만났다. 13~15일 남편의 때늦은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를 마친 뒤였다. 참사 이후 최 기자가 언론 앞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저도 기자지만, 지난주까지만 해도 인터뷰 같은 건 하나도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마음 이해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저도 지금 기자님 계신 그 자리에 많이 앉아봤잖아요. 입장이 거꾸로 돼보니까, 많은 게 달라요.
오송 참사 때 버스 안에서 돌아가신 아파트 청소노동자 어머니의 아드님을 인터뷰하러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아드님이 저한테 되게 냉소적이셨거든요. 이런 취재해서 뭐하냐, 어차피 바뀌는 것도 없다, 뭘 자꾸 물어보냐고 화를 내셨어요. 그때 솔직히 저는 이해가 안됐습니다. 기사화되는 게 유가족들한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그분이 떠오르더라고요. 이제야 그분 심정을 알겠어요. 저도 그동안 그런 기사를 많이 써왔지만, '진상규명'하면 뭘 하고, '책임자 처벌'하면 뭘 하죠? 죽은 남편은 그대로 죽어있어요."
참사 당일 아리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 오전 10시 30분, 최 기자는 청주에 있는 충북인뉴스 사무실에 출근해 다른 취재를 하고 있었다. 오후 12시가 넘어서 아리셀에서 남편과 함께 일하는 친오빠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큰불이 났는데 남편이 안 보인다는 얘기였다. 최 기자는 곧장 화성으로 달려갔다. 남편에게 전화를 수십 통 걸었지만 답은 없었다.
'좀 다쳤겠지' 하는 생각으로 인근 병원을 찾으며 이동하던 중 첫 번째 사망자가 발견됐다는 속보가 흘러나왔다. 60대 한국인이라고 했다. '60대'라는 말에 안도했다. 남편은 52세였다. 화성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오후 2시 반쯤, 소방서에서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으로 가라는 통보였다. 속보에 나왔던 첫 번째 희생자가 최 기자의 남편 고 김병철(52)씨였다.
최 기자는 "애들 아빠가 죽고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이라며 울먹였다. 기자로서 수많은 참사 현장을 겪었지만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무력하다"고 했다. 옆에서 엄마의 말을 듣던 두 딸의 눈가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첫째 딸 김민정(23)씨는 "지금도 아빠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고 목소리가 들릴 것 같다"고 했다. 둘째 딸 김소혜(20)씨는 "어릴 때 학원도 안 가고 아빠한테 수학과 영어를 배웠다"고 했다. 고1인 열일곱 막내아들은 학교에 가있었다. 김씨는 세 아이의 아빠였다.
"참사 대하는 아리셀의 태도도 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