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이 4일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를 나서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저런 정도면 거의 난파선 수준이다."
지난 3일 오전 TBS <뉴스공장>에 출연한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이 현재 국민의힘 선대위를 일컬어 한 말이다. 사람에 따라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 말은 당장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현실로 다가왔다. 떨어진 윤석열 대선 후보 지지율에 대한 책임을 두고 국민의힘이 바로 그날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침부터 김종인 총괄 선대위원장이 "선대위 전면 개편"을 표명했고, 이어 급작스레 윤석열 후보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었다. 이후 말이 많았던 신지예 새시대준비위원회 수석부의장이 전격적으로 사퇴했고, 오후에는 김종인 위원장을 제외한 김기현 원내대표와 김도읍 정책위의장 등 선대위 지도부 전체가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김한길 새시대준비위원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이 과정도 순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의원총회에서는 이준석 당대표도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이에 이 당대표는 그럴 일 없다며 일축했다. 김종인 위원장의 사퇴를 두고도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대선을 두 달 정도 앞두고 국민의힘이 권력투쟁으로 당이 쪼개질 정도로 내홍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한 명으로서 이번 국민의힘 사태가 경악할 수준은 아니었다. 큰 선거를 앞두고는 권력투쟁과 이합집산이 늘 있어 왔기 때문이다. 물론 제1야당이 이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조금 놀라웠지만, 어쨌든 시간이 지나면 저 내홍은 정리될 것이고 윤 후보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국민 앞에 설 것이다.
다만 어제 '아비규환'의 국민의힘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김종인 위원장이 윤석열 후보에게 했다는 바로 그 발언이었다.
"내가 당신의 비서실장 노릇을 선거 때까지 하겠다. 총괄선대위원장이 아니라 비서실장의 노릇을 할 테니, 후보도 태도를 바꿔서 우리가 해준 대로만 연기만 좀 해 달라,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꼭두각시 대통령
사실 처음 위 발언을 동영상 대신 기사의 짧은 제목으로 봤을 때는 어리둥절했다. 김종인 위원장이 이야기한 연기가 무슨 뜻인지 도대체 감이 잡히지 않았던 탓이다. 무엇을 연기하자는 거지? 설마 그 연기가 '배우들의 연기'를 뜻하는 것인가?
다행히 기사는 이런 구독자의 궁금증을 이미 예상한 듯 '연기'라는 단어 옆에 친절히 '演技'라는 한자까지 적어놓고 있었다. '연기: 배우가 배역의 인물, 성격, 행동 따위를 표현해 내는 일.' 김종인 위원장은 대놓고 자당 후보를 '연기'나 하라고 저격하고 있었다.
뜨악했다.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굳이 대놓고 대통령 후보에게 연기를 주문했다고 고백하다니... 선대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고육지책인지, 아니면 대선을 이미 포기한 노정객의 탈출용 명분 쌓기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말도 안 되는 언사를 들은 국민들의 당혹스러움이다.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박근혜와 최서원(개명 전 이름 최순실) 트라우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했던 것은 그가 꼭두각시로 대통령을 연기했고, 최서원이 그 뒤에서 국정농단을 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민의힘은 부끄러움 하나 없이 또 다시 윤석열 후보에게 연기를 운운하고 있다. 대놓고 국민을 기만하고 있다. 과연 누가 윤석열을 꼭두각시 대통령으로 세워놓고 권력의 사유화를 원하고 있는가. 윤석열 후보는 전두환 옹호 발언을 하면서 사람만 잘 쓰면 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는데, 어쩌면 이는 그가 아니라 국민의힘의 기조인지도 모른다.
3류 배우 윤석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