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모토 사오리가 ‘사랑합니다’를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유성호
"이것 좀 보실래요?"
한국어 억양과 발음이 비교적 정확한 일본인이 겸연쩍은 듯이 머뭇거리면서 가방에서 꺼내든 공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또박또박 눌러쓴 정자체 글자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글도 적혀 있었다.
- 한글은 거의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적을 수 있는 글자.
- 해례본에 따르면 사람의 발성기관으로 '음'을 그대로 문자로 표현한 아주 과학적인 글자라고 설명하고 있다.
1443년에 창제된 훈민정음의 해례본까지 살펴본 그의 학구열에 감탄했다. '해례'는 세종대왕을 보필하면서 한글 반포를 도운 정인지, 박팽년, 신숙주, 성삼문 등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의 자음과 모음을 만든 원리와 용법을 설명한 글이다. 이를 제대로 들춰본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아래 4분짜리 영상도 한번 보아주기 바란다.
"방탄소년단 노래 수어 안무... 감동 받았어요"
영상은 방탄소년단(비티에스·BTS)이 작년에 발표한 곡 'ON'의 강렬한 리듬에 맞춘 열정적인 춤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안무는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뜻이 담긴 말이다. 손짓과 몸짓, 표정이 다름아닌 한국 농인들의 수어였다. 방탄소년단이 지난 7월 발표한 '퍼미션 투 댄스'에 등장하는 수어 안무가 세계 농인들을 감동시키기 1년 전에 그는 이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호응을 얻었다.
"해외의 아미(방탄소년단 팬덤)들이 보고 댓글을 달아줬습니다.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데 예술적으로 표현해줘서 놀랍고 고맙다는 반응이었어요. 안무를 공개하기 전에는 음악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을 했거든요. 농인 아미들도 '우리 언어'로 표현해줘서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수어 아티스트인 후지모토 사오리를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의 다국적 외국인 연예 기획사 에프엠지(대표 이승택) 사무실에서 만났다. 무분별한 외국어 남용 등으로 우리말이 오염되는 현상을 진단하는 기획 취재를 하면서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한글'과 '한국 수어'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이 궁금했다.
그는 SBS 예능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서 'FC 월드 클라쓰'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다. 시청자들은 예선전 첫 경기에서 왼발로 첫 골을 넣었던, 매 경기마다 온 몸을 던져 볼을 쫓는 그의 투혼을 기억한다. 하지만 농인들 사이에서 그는 수어 아티스트로 더 유명하다. 사오리는 오는 10월 5일 한류 한글 학술대회 때 한글 홍보대사로도 위촉될 예정이다.
그가 한글을 처음으로 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해외 연수를 한국으로 왔는데 한국 학생들이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는 모습을 보고 부끄러웠다고 했다. 대학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했고, 일본에서 한국어 능력시험 최고급 단계인 6급을 통과했다.
한글에 이어 한국 수어 도전... "선한 영향력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