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가서 라면을 끓여 먹고 있다(사진 가운데).
정경호 선생 제공
분신 이후에 한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친구들이 정신을 가다듬고 전해준 이야기는 그의 인간적 면모와 신념 등이 녹아 있어 더욱 숙연해진다.
보성 동국민학교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잘해서 그 학교의 전통으로 흑염소를 장학금으로 받았다고 한다. 그 흑염소를 잘 키워서 새끼를 낳으면 학교에 한 마리 들여놓아 후배들이 장학금으로 또 흑염소를 받는 식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와서는 한 친구가 자전거 하이킹을 제안해서 가게 되었다. 철수가 "우리 라면이라도 끓여 먹자"라고 제안했고, 비포장길인 보성에서 회천 가는 고갯길 마루인 봇재에 들러 라면을 끓여 먹었고, 철수는 "아~ 좋다!" 하면서 뒤로 고개를 젖히고 사진을 찍었다.
체구가 작은 짝궁을 친구들이 놀리고 무시하자, 철수는 "야!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지 놀리면 되냐?"라고 말했고, 어눌하여 친구들에게 무시당한 친구를 보호하고 공부도 도와주었던 의리가 넘치는 친구였다.
그때 철수에게 보호를 받았던 친구가 분신 이후 병상에 찾아와 '얼른 일어나 백 원짜리 라면 끓여 먹자'는 편지를 남겨서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1학년 때 동아리에 들어오기 위해 선배들이 면접을 보는데 '가난이 우리 부모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난한 농촌 현실을 바꿔야 한다'고 하여 같이 면접을 보러 대기하던 친구가 너무나도 인상이 깊어서 자신의 일기장에 써놓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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