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포자'는 서울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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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최근엔 '서포자'(서울 포기자)라는 신조어도 생겨났습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서울 집값에 치여, 혹은 더 좋은 주거 여건을 찾아 서울을 탈출해 집을 구한 사람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하는데요.
이 표현도 곱씹을수록 좀 묘했습니다. '서포자'라는 단어 속에는, 왠지 서울에 사는 건 당연하고 그 외의 지역에서 사는 건 예외적인 일이라는 인식이 담겨 있는 것만 같았거든요.
지역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지포자(지역포기자)' 혹은 '인포자(인천포기자)'나 '부포자(부산포기자)' 등으로 불리지 않는 걸까요? 애초에 지역을 '포기'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걸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요?
어쩌면 '서포자'는 서울 중심적인 한국 사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단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30 청년기획단 시민기자들에게 두 번째 글감으로 '서울 중심 사회에서 살아남기'라는 주제를 제안한 이유입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서울로 올라가지 않고 고향 땅에 남아, 이른바 '김포의 딸'로 불리고 있다는 정누리 시민기자는 "딱히 '서울살이'를 원치 않으면서도 출퇴근 시간 등의 이유로 이 지역을 떠나야만 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나의 자취방에 대한 특이한 소문이 퍼졌다. 우리 집이 '뷰 맛집'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 와 창문 너머의 탁 트여 있는 경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들은 이곳의 월세를 궁금해했다. 넌지시 말해줬더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싸도 너무 싸서.
- 관련 기사 '서울러'가 '김포러' 부러워하는 이유, 참 씁쓸합니다에서
그런가 하면 이은지 시민기자는 1평 남짓한 노량진 고시원 방에서 시작한, 자신의 서울살이 7년차 경험을 되짚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이 아니었다. 지방의 작은 소도시, 그곳이 나의 고향이었다. 큰 가방을 등에 메고 양 손 가득 짐을 든 채 노량진 다리를 건널 때 처음으로 억울했다. 왜 난 서울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 관련기사 노량진 고시원에서 시작한 서울살이 7년차입니다 에서
정누리 시민기자와 이은지 시민기자의 이야기는 언론에서 흔히 그리는 '청년'의 모습과 좀 다릅니다.
정 기자가 담아낸 친구들의 사례는 가능하다면 지역에 정착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서울에 '살 수밖에 없는' 경우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교통이 불편해서, 문화 인프라가 부족해서 등. 그는 '서포자'라는 현상에 앞서, 왜 청년들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서울로 올라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지 그 이유를 짚어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 기자는 기사를 통해 '집', '터전'에 대한 고민을 풀어냈습니다. 이 고민은 사는 것(buying)이 아니라 사는 것(living)으로서의 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글에서 "나의 집은 도대체 어디일까. 서울의 7평 남짓한 원룸일까, 부모님이 계신 고향집일까" 혼란스러워하면서도, 결국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1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불투명한 미래 앞에 불안에 떨고 있던 그곳이 나의 집이었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출근하고 힘 빠져 오르는 언덕길이 나의 집이고, 겨우 7평짜리 원룸이지만 구석구석 나의 취향을 채워놓은 이곳이 나의 집이다. 결국엔 내가 있는 곳이, 나 자신이 나의 집이었다. 이렇게 답을 내리고 보니 어느 곳에서도 나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2030 청년이라고 해서, 모두 부를 얻기 위해 서울살이에 목을 매거나,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 보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글은 기성 언론이 그리지 않는 또 다른 청년들의 현실, 고민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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