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경북 경산에서 코로나19에 감염된 중증환자가 서울 양천구 감염병 전담병원인 서남병원에 후송되고 있다.
이희훈
한국에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창궐했던 지난 3월 이후, 알베르 카뮈의 1947년 작 소설 <페스트>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퍼지는 이 바이러스 앞에서 사람들은 73년 전 소설을 다시 손에 들었다.
<페스트>엔 의사, 기자, 법조인, 공직자, 청년, 범죄자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 글에선 많은 등장인물 중 성직자 파늘루에 주목하려고 한다. 도시의 저명한 신부인 그는 페스트 창궐 후 시민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사 이래 하느님께서 내리신 재앙은 오만한 자들과 눈먼 자들을 하느님 발밑에 꿇어앉혔습니다. (중략) 오늘 여러분에게 페스트가 닥친 것은 반성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정의로운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이 떠는 것은 당연합니다."
책을 손에 쥔 이들 대부분은 이 대목에서 혀를 찰 것이다. 말 그대로 '소설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원인과 그것이 주는 공포를 깨우친 인류는 파늘루의 설교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안다.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맹신 바이러스
하지만 그와 같은 일이 2020년에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정부가 교회의 대면예배를 제한하자,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 모양새다. 아래는 지난 8월 30일 대면예배를 강행한 한 목사의 설교 내용이다.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 천국 가고 예배를 안 드리면 지옥 가는 겁니다. (중략) 하나님은 전염병을 주실 수도, 해결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예배를 중단한다? 예배를 드려야 코로나가 없어지는 겁니다. 코로나도 하나님의 손에 있는 줄 믿습니다. (중략) 하나님께선 고난을 통해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고 있어요. 믿음과 기도로 이기지 못하면 환난과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져 버립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엔 카뮈조차 예측하지 못한 더욱 큰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전광훈으로 대표되는 일부 목사들이 왜곡된 정치적 입장을 이 사안에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주사파 정부'가 나라를 북한에 팔아 교회를 문 닫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더욱 대면예배를 강행하고 정부와 맞서 싸워야 한다고 설교한다. 급기야 선지자를 자처하고 순교를 입에 올린다. 과학적 사고에 기초해 공동체 구성원 간 신뢰를 쌓아가야 하는 지금, 편향된 종교관·정치관에 의한 맹신이 바이러스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