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의료운동본부 회원들이 27일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원격의료 추진을 중단하고 공공의료 확충을 정부에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5.27
연합뉴스
미국에서는 원격진료가 허용돼 있다. 나는 '휴대폰으로 간편히 의사를 만나라'고 권하는 메일과 전단을 받는다. 미국 병원들이 코로나 사태로 한동안 일반 환자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선점'한 원격진료는 코로나라는 비상상황을 타개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됐을까?
이 글을 쓰는 6월 8일 현재, 미국에서 확진자 수는 2백 만 명을 돌파했고, 사망자는 일찍이 11만 명을 넘어섰다. 1백만 명당 사망자가 340명에 달하는데, 이는 5명인 한국의 68배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수치가 부정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천문학적인 입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자가 치료를 하다 사망한 환자가 많고, 이 수치들은 통계에 누락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는 코로나 사태를 비교적 잘 지켜온 '케이방역'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바이러스와 대면해 싸워온 의료진의 헌신과 엄격한 관리체계를 시행한 보건당국, 그리고 여기에 잘 따라준 시민들 덕이 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국 의료체계의 허점이 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국민당 병상 수는 세계적으로 수위를 달릴 정도로 많지만, 공공병상 비율은 세계에서 가장 영리화 된 의료체계를 지닌 미국보다도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운좋게 재앙으로 번지지 않았던 의료체계 구멍을 메우는 일이지, 어설픈 산업 논의를 꺼내드는 게 아니다.
'비대면 산업'의 참담한 현실
지난 5월 말 부천 쿠팡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100여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그동안 숨겨져온 유망 비대면 기업의 이면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직원은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일을 쉬지 못한 채 폐쇄적인 공간에서 업무를 계속했고, 이것이 대량 확산으로 이어졌다.
해당 업체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총 3673명이었는데, 이들 중 정규직 직원이 98명이고, 계약직이 984명, 일용직이 2591명이었다. 무려 97.3%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것이다. 이는 이른바 '비대면 산업'의 증가가 어떤 형태의 고용을 양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겉으로 드러난 '비대면' 경제의 수면 아래 얼마나 거대한 대면 노동이 자리하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뒤에도 출근한 노동자를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계약직은 정규직이 되기 위해 결근하지 못하고, 일용직은 먹고살기 위해 쉬지 못하는 현실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 가운데는 '코로나바이러스보다 실직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쿠팡의 대량감염 사태는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노동환경을 드러냈지만, 이 업체는 동종업에서 '꽤 괜찮은' 편에 속했다고 한다. 급여도 상대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하루 일해도 4대 보험 가입 혜택을 줬기 때문이다. '아프면 쉬라'고 요구하기 전에, 아프면 쉴 수 있는 노동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비대면'의 미래를 논하는 일은 '대면'의 현실을 개선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언택트'는 없다. 영어 표현만 엉터리가 아니라, 이 말이 그려내는 현실까지도 엉터리다.
(* 다음회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