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교육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3학년 교실이 텅 비어 있다. 개학이 연기되면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수시·정시모집 등 대학 입시 일정도 12월 3일로 2주 연기됐다.
연합뉴스
"코로나19 이전의 세상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질병관리본부를 비롯한 방역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예언'이다. 감염 예방을 위한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일 테지만, 우리 사회 시스템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앞으로 닥쳐올 미지의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대론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을 막아내고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끝은 아니라는 거다. 정치인들과 학자들은 지금부터가 진짜 위기라고 이구동성 말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선제적으로 조처하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라는 이야기다. 당장 눈앞의 경제 위기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그럼 학교는 어떻게 될까. 원격수업에 지친 아이들은 하루빨리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아우성이다. 왜 안 그렇겠는가. 출석을 위해 종일 스마트폰과 노트북 화면을 쳐다봐야 하는 생활에서 벗어나,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건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는 '예전의 일상'은 다시 오지 않을 성싶다. 건물이야 지난 겨울방학 이전의 모습 그대로지만, 학교생활은 그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일과 중에 정부의 권고대로 '생활 방역'이 작동되는 학교 풍경은 오랜만에 등교한 아이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게 틀림없다.
코로나 이후의 학교
등교 개학을 앞두고, 학교는 감염병 관리를 위한 훈련을 자체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발생 감시, 예방 관리, 학사 관리, 상담 지원 등 감염병 관리를 위한 교사 조직이 꾸려졌고, 확진자 발생 시 세부 대처 요령이 마련되었다. 가상 시나리오에 따른 방역 훈련까지 마쳤다.
정부도 여러 차례 밝혔듯, 코로나의 근절은 사실상 요원하다고 한다. 당장 올해 가을과 겨울에 2차 대규모 확산이 우려된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코로나의 확산이 상수라면, 집합 교육이 불가피한 학교에서 감염병 관리는 무엇보다 중요한 교육 목표일 수밖에 없다.
일단 2학기로 죄다 미뤄뒀지만, 올해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등 단체 활동은 사실상 어렵게 됐다.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지 않은 상태에서 밀집된 버스와 숙소를 이용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천만한 일이다. 하긴 마스크를 낀 채 실시하는 단체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도 싶다.
학교가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의 변화만으로 그칠 것 같진 않다. 이미 수업일수가 조정되었고, 사상 최초로 온라인 개학까지 한 마당이니, 앞으로 맞닥뜨릴 전인미답의 변화가 예측할 수 없어 더욱 두렵다. 코로나가 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변화를 몰고 올 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장 감염병 관리의 일상화처럼 외압에 따른 변화부터 시작됐지만, 코로나로 드러난 내재적인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자성이 뒤따를 것이다. 교사도 학생도 코로나로 인해 여태껏 미처 깨닫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는 교육의 본령을 성찰하는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그저 교실과 급식소 등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는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방역을 넘어, 기성세대는 학교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미래 사회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인류에게 22세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자못 염세적 예언까지 나오는 터다.
우선, 수업 방식의 변화에 직면해 있다. 교실을 벗어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피시 등을 활용한 비대면 원격수업이 보편화되는 건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앞으로 '19세기 교실에서, 20세기 교사가, 21세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조롱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이젠 교직원 회의 때 교무수첩을 들고 가는 교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젊은 교사들을 중심으로 태블릿 피시와 전자펜이 교무수첩과 볼펜을 대신하고 있다. 지난 두 달 간의 휴업과 온라인 개학 기간 동안 태블릿 피시를 마련해 수업과 업무에 활용하는 교사가 부쩍 늘었다.
조만간 정근이나 개근상도 무의미해질 듯하다. 교육부의 코로나 대응 매뉴얼에 의하면, 열이 나거나 아프면 출근이나 등교는 금지된다. 연가는커녕 병가를 신청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고, 웬만해선 학교 수업을 빠지지 않는 걸 미덕으로 여겨온 문화도 이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결석해도 교과 진도는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비대면 수업으로 얼마든지 벌충할 수 있다. 교사의 수업과 업무도 재택근무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전국의 교사들과 아이들이 지난 두 달 동안 충분히 경험했고, 학교와 가정의 IT 인프라와 교육 플랫폼 역시 서둘러 갖춰졌다.
그러다 보면 학교에서 공부보다 건강과 안전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실히 자리를 잡게 될 것이다. 6년 전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교육과정에 안전교육이 의무화되었듯이, 이번 일로 감염병과 개인위생 교육이 강화될 공산이 크다. 그동안 보건 교과는 사실상 '자습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