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을 기다리며 대기하는 퀵서비스 배달 기사들. 이들에게는 변변한 휴식공간조차 없다.
안호덕
그러나 지금은 진짜 시장이 딱 멈췄다. 퀵서비스 배달 기사들도 건물 한쪽에 모여 '콜'을 기다리고 있고, 주변 식당들은 밥조차 안 먹냐며 울상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날마다 목도해야 하는 현실이다. 고달프고 무겁다.
'코로나19 사태'에 직격타를 맞은 건 확진자 수 급증으로 손님이 급감하고 매출이 급락한 2월 말부터지만, 감염병의 영향을 체감한 건 그보다 훨씬 전이었다. 우한시를 중심으로 중국에서 코로나19 감염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면서, 제품 공급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중국의 생산 공장이 문을 닫고 통관조차 어려워지자 부품의 품귀 현상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특히 중국에서 전량을 수입하다시피 하는 컴퓨터 메인보드, 그래픽카드, 케이스와 중저가 모니터의 공급 부족 사태가 두드러졌다. 수입 가격은 하루가 멀다 않고 올랐다. 제품을 구하지 못해 납품 기일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겼고, 오른 가격에 마진도 점점 쪼그라들었다. 그래도 일시적이겠거니 했다. 코로나19가 지금처럼 나와 내 주변을 뒤흔드는 태풍이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31번 확진자를 기점으로 감염이 급격히 확산하면서 공포는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송에서는 연일 마스크 품귀 현상을 생중계하듯 전했고, 긴급재난문자는 서울시청과 가까운 구청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스마트폰으로 전송됐다.
방역과 건강도 걱정이었지만 상가 사람들의 진짜 불안은 다른 데서 오고 있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거래처인 지방 컴퓨터·사무기기 전문점들의 매출 감소 사례가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구경북에서 확진자가 매일 수십·수백 명씩 나올수록 그 지역 거래처의 주문량은 곤두박질쳤다. 거래처와의 전화 통화만으로도 전국의 공포가 실시간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다른 곳은 좀 괜찮나요? 여기는 관공서, 학교, 전부 출입을 통제해서 견적 상담도 못 해요. 학교 네트워크 공사도 인부 출입 문제로 미뤄졌습니다."
학교와 관공서뿐만이 아니었다. 군부대에 중점적으로 납품하던 거래처 역시 코로나19 때문에 당분간 출입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대구경북, 전남전북, 강원, 세종시의 관공서와 학교, 군부대 주문이 중지됐고 소비자 발길마저 끊겼다는 소식이 날이면 날마다 더해졌다.
거래처에 매출 부진은 그들에게 물건을 팔아야 하는 나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으로 다가왔다. 예년 이맘때 매출의 반이라도 넘길 수 있을까? 이달 임대료와 관리비, 공과금은 제대로 낼 수 있을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장부를 들여다보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다들 힘들다고 하지만, 그래서 함께 이겨내자고 하지만, 결국은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것이 자영업의 비애다.
오랜만에 주문 전화가 왔다. 웹캠 30EA. 화상카메라는 이제 별로 찾지 않는 제품 중 하나인데 서른 개나 주문이 들어왔다. 의아했다. 대리점에 전화하니 품절이란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화상회의와 사이버강의가 늘어나면서 화상카메라 설치가 때 아닌 유행을 맞고 있단다. 대리점에서는 1년 치 판매할 양을 보름 만에 다 팔았다며 '화상 카메라가 마스크처럼 귀해졌다'고 농담했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겨우 물건을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 코로나19 때문에 나도 일 년에 열 개도 팔기 힘든 화상카메라와 웹캠을 한꺼번에 서른 개나 팔았다. 참 요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