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사무소 안내문코로나19 이후 인력사무소 입구에 적힌 안내문
고기복
처음에는 "경고, 중국에서 오신 분 나오지 마세요"라고 적혀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외국에서 온 지 20일이 넘지 않았으면 나오지 말라는 말로.
코로나19는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실직으로 쉼터 이용을 문의하던 한 이주노동자가 던진 첫 마디는 불안이 어떻게 편견을 낳는지 보여주었다.
"거기 중국 사람 많아요?"
머리를 한 대 맞는 기분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편견을 유도할 수 있는 특정 지명을 피하도록 한 원칙에 따라 'COVID-19'로 명명하고 한국 질병관리본부도 '코로나19'로 정했는데, 일부 정치인들과 언론은 계속 '중국폐렴'이니 '우한폐렴'이니 떠들고 있다.
입국한 지 일 년도 더 된 중국인이라고 말해도 긴말이 필요 없었다. 이처럼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불거진 중국인 혐오, 말하면서도 그게 혐오인 줄 모르고 최선의 예방책으로 착각하는 무지함은 부정확한 정보와 그로 인한 공포에 기인하고 있었다.
출국 결심했지만 더 불안한 이주노동자들
쉼터에 들어오겠다는 사람을 거절하고나면 여간 마음이 불편한 게 아니다. 2월 중순에 검은 마스크를 하고 나타난 두 사람은 사나흘 안에 거처를 정해야 한다고 했다. 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공간은 부족하고 나가겠다는 사람이 없다고 형편을 설명했다.
전화번호라도 받아둬야 했는데 당장 갈 곳을 찾는 사람에게 무슨 의미일까 싶어서 묻지도 못했다. 그런데 둘이 왔다 간 지 며칠 되지 않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출국하거나 출국 일정을 잡으면서 쉼터 이용자들 얼굴이 속속 바뀌고 있다.
외국인 고용허가제 농업 분야로 입국했다가 임금을 못 받고 두 달 만에 그만둔 나흐만(가명)과 산재 이후 통원 치료 중에 쉼터에서 지내고 있던 무하마드(가명)가 지난주에 이미 귀국했다. 폰리(가명)는 법무부 재입국 프로그램 문의로 자진출국을 포기했다가 코로나19 이후 출국 결심을 굳히고 표를 구입했다. 소치아(가명)도 못 받은 월급 때문에 고용노동부에서 임금체불확인서를 발급받아 놓고 기다렸지만 출국하기로 했다.
시레(가명)는 불안한 마음에 하루에도 몇 번씩 결정이 뒤바뀐다. 자진 출국하겠다고 출입국에 신고해 놓고도 출국을 주저하고 있다. 귀국하면 한 달간 격리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격리 문제로 고민하기는 표를 구입한 조지아(가명)도 마찬가지이다.
"한 달간 집에 가둬놓고 밖에서 못질한다는 말이 있어요."
아이의 입술갈림증과 사시교정 수술을 올해는 꼭 하겠다고 계획 중이던 부부 역시 심각하게 출국을 고민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향에서 '한국은 위험하다는데 빨리 돌아오지 않고 뭐하냐'며 귀국을 독려하는 부모님 성화를 견딜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쉼터에 드나드는 사람이 속속 바뀌는 가운데 말도 없이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찾아왔다기보다는 되돌아왔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두 달 전에 쉼터에 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디에서 일했는지를 묻자 그는 "용인에서 (왔다), 택시 3만 원 (주고)"이라고 했다. 두 달 일했는데 월급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실직과 구직을 반복하는 그에게 임금체불이라는 고통까지 더해진 것이다. 요즘 월급을 주지 않는 고용주들의 변명은 한결같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어서"라고.
택시비 3만 원을 지급하고 무조건 쉼터에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자로 쉼터 이용을 문의하는 사람도 있다. 철자가 엉망이라도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사장님 나쁜 사람, 고로나 잇어 월급 백만. 언제 없어 몰라요."
코로나19 때문에 백만 원만 준 사장이 언제 월급을 제대로 줄지 모른다는 말이었다. 이어 그는 "(본국) 가고 싶어요, 고로나 무서워"라고 쓰며 울음 이모티콘을 남겼다.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는 스야(가명)였다. 그는 한 달 내내 휴무 없이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일하는데, 사장이 코로나를 핑계로 월급을 후려쳐서 귀국하기 전에 쉼터에서 지내고 싶다 했다.
체류자격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실직 중인 이주노동자들은 생활 기반이 없다보니 출국을 서두른다. 막상 출국을 결정해 놓고도 본국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불안해 하기는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