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내가 첫 아르바이트를 한 곳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다. 그리고 나는 딱 30년 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서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스무 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오십의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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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의 나는 방송작가를 꿈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대학에 가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미팅과 아르바이트였다. 막 입학하고 나서는 미팅 쫓아다니느라 바빴고, 그게 시들해질 무렵 친한 고교 동창을 만났다가 아르바이트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민을 가기 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자기 일에 대해 신나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솔깃했다. 내 표정을 봤는지 친구는 같이 해보자고 권유했다. 나는 바로 지원했고, 바로 합격했다. 그렇게 나의 첫 아르바이트 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때 내가 첫 아르바이트를 한 곳이 지금 일하고 있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다. 딱 30년 만에 그 자리에 다시 선 것이다. 딱히 이곳을 염두에 두고 지원한 것은 아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결정하면서 여러 군데 이력서를 냈는데 겨우 합격한 곳이 지금의 지점이었다. 스무 살에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곳이 오십의 나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준 셈이다.
스무 살 땐 모든 게 새로운 신세계였다. 출퇴근 도장을 찍는 것도, ○○씨로 불리는 것도 나에겐 '진짜 어른' 인증을 받는 것 같았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경험도 꽤 짜릿했다. 게다가 동료들이 다 또래 친구들이었으니 얼마나 재미있었겠는가. 좋아하는 오빠까지 생기는 바람에 나의 일상은 점점 아르바이트 위주로 돌아갔다.
학교 다니랴 아르바이트하랴, 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랴 동아리 활동하랴, 나의 일주일은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였다. 그래도 피곤한 줄 몰랐다. 첫 사회생활, 첫 월급, 첫 회식 등 스무 살의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행복한 '처음'을 많이 선물해주었다. 어쩌면 그때의 첫 사회 경험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기에 그 이후 이어진 정글 같은 진짜 사회생활을 잘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자리에 다시 섰다. 그리고 스무 살 동료로부터 성년이 되었다는 말을 들은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을까.'
그때 나는 꿈이 창창했다. 비록 방송작가가 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이었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일이니 급할 게 없었다. 꼭 방송작가가 아니어도 뭔가가 될 거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감도 있었다. 아르바이트 원서만 내도 바로 합격했기에 일할 때도 자신 있었고, 실수해도 위축되지 않았다. 내 기억이 왜곡되었을 수도 있지만 그땐 세상이 스무 살 젊음에 대해 관대했다.
30년 만에 다시 돌아온 이곳은 많이 변했다. 그동안 자동화된 부분들도 많고, 일하는 시스템도 달라졌다. 무엇보다 달라진 건 '나 자신'이다.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더뎌진 이해력과 마음과 따로 노는 몸 때문에 분명 설명을 들었는데도 자꾸 까먹고 헷갈렸다. 기본적인 카운터 업무를 익히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을 정도다.
자꾸 과부하가 걸리고 실수도 잦았다. 손님이 몰리는 바쁜 시간에 내 실수로 주문이 밀릴 때에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루하루 나의 멍청력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스무 살 땐 놀이터 같기만 하던 그곳이 지금은 내 생계의 수단이 되었다. 또래도 없고 친구도 없다. 작은 일에도 함께 깔깔 웃고 장난치던 유쾌함과 발랄함 대신 "에구구" "아이고 주여" 하는 신음만 남발한다. 일하고 온 날은 오후 8시부터 꾸벅꾸벅 졸기 일쑤다.
내게 주어진 기회가 당연하게 여겨졌기에 그때는 내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고맙고 작은 기회조차 소중하다.
그때는 연애든 친구든 뭐든 세상의 가능성이 나를 위해 열려 있는 것 같았다. 뭐든 꿈꿀 수 있었고 미래는 희망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닫혀가는 문 같다. 타기 위해 죽어라 뛰고 있는데 야속하게 닫히는 문처럼 말이다.
눈부셨던 희망은 차가운 현실로 바뀌었다. 가끔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공연히 서러워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누군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갈래?"라고 묻는다면 단칼에 말할 수 있다. "아니오!"라고. 30년이란 시간이 녹록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굽이굽이 지나온 고개들이 만든 내 삶과 내 모습이 소중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정말 열심히 사셨군요,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