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전 강원 춘천고등학교에서 고교 3학년 수험생들이 전국연합학력평가 응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시험은 대입 수능을 한달여 앞두고 마지막으로 치러지는 학력평가다.
연합뉴스
동료교사들은 모두 '초심'을 이야기했다. 길을 잘못 들었다 싶으면, 그곳에서 새 길을 찾아 헤매기보다 멀어도 처음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거다. 촛불 시민들의 바람을 공약에 담았고 선거를 통해 국민들로부터 선택받았다면, 좌고우면하지 말고 소걸음으로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도, '미워도 다시 한 번'을 외치는 이도, 공약집 첫머리에 '교육은 국가의 책임'이라고 명시한 문구를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시 우편물로 배달된 선거홍보물을 아직까지도 버리지 않고 있다는 이도 있었다. 스마트폰 바탕 화면에 가족사진 대신 그 문구를 깔았다면서, 당시 교육개혁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었다.
당시만 해도 '총론'이 명확하니 '각론'은 톱니바퀴 맞물리듯 원활하게 작동될 것이라고 여겼다. 국공립 유치원을 확대한다는 것부터 초등학교 종일 돌봄 교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한 고교학점제, 공교육 혁신과 대학입시 단순화, 대학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 등이 마치 생애주기에 맞춘 기승전결 식의 완벽한 공약처럼 보였다.
하지만 '정치'는 '교육'을 가만두지 않았다. 정치는 정부의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통제하는 일이긴 하지만, 교육정책에 사사건건 정치 논리가 개입되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일이 반복됐다.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정책을 손보게 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한유총 사태'로 해묵은 색깔론 논쟁이 벌어지는가 하면, 돌봄 교실 운영 문제가 애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단계적으로 자사고와 특목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은 수년째 수월성 교육과 하향평준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때마다 보수 언론은 앞 다퉈 정부의 무능을 탓했고 여론은 날로 악화되었다.
수능 전형과 학생부교과전형, 학생부종합전형, 이렇게 세 가지로 대학입시를 단순화시키겠다는 것도 학생부종합전형이 '현대판 음서제'라는 비판에 휩싸이며 혼란을 거듭했다. 덩달아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한 고교학점제의 도입도 한 해 두 해 미뤄졌다. 이 와중에 터진 '조국 사태'로 공교육 정상화라는 대의에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
대학의 체질 개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 개혁도 가물가물하긴 마찬가지다. 당장 학령인구의 대폭 감소로 대학 정원의 감축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공고한 대학 서열화로 인해 지방 소재 대학이 직격탄을 맞을 게 불 보듯 환해, 통폐합과 폐교를 앞둔 대학의 극심한 반발이 예상된다.
공약을 다듬을 당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정부가 이러한 갈등을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예상하지 못했다면 진짜 무능한 것이고, 예상했음에도 갈등이 첨예하다는 이유로 공약을 포기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공약은, 말 그대로, 실천해야 할 목표일 뿐, 이해 당사자의 눈치를 보며 양보하고 타협하는 수단일 수 없다.
정치에서 독립된 교육부 필요... 대학서열화 혁파하는 정공법 절실
따박따박 나오는 봉급에 만족하며 일하는 월급쟁이가 아닌, 진정 우리 교육의 미래를 고민하는 교사라면, 가슴 설레게 했던 2년 반 전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수 있는 근본적인 해법을 모두 알고 있다. 첫째, 사위어 가고 있을지언정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시민의 힘을 믿을 것. 둘째, 교육개혁의 '총론'에 충실할 것. 마지막으로 '정치'와 '교육'을 철저히 분리할 것.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고교서열화 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이상 '단계적으로' 접근할 문제일 수 없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듯, 법적 안정성 운운하며 시간 끌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나아가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성적과 정비례하는 현실에서 강력한 경제적 양극화 해소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부의 세습을 막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교육개혁 방안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이미 일반화된 고교학점제의 도입이 시급하다면, 그에 맞춰 교육과정을 정비하고 교원의 역량 강화에 '올인'하면 된다. 개개인의 흥미와 적성을 고려해 진로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건, 공약은 물론 교육의 본령에도 부합한다. 하물며, 뜬금없는 정시 비중의 확대 방침은 이러한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순식간에 무력화시키는 '자해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