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정에 뛰어든 해고노동자의 절규철도노조 KTX 열차승무원지부 김승하 지부장(2006년 해고)이 5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들어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 구속 수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이희훈
- 이번 사태가 과거 사법부의 스캔들과는 다르다고 썼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과거 박정희 혹은 전두환 정권이 폭압적인 정권이란 건 우리 모두 다 안다. 그 시절 사법부 독립은 항상 위협받았다. 그 폭압적 외압에 판사들은 굴복했었다. 총칼로 밀어붙이는데 어떻게 할 수 없잖나. 남산에 끌려가 '조인트' 까이던 시절 아닌가. 그런 상황에서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판결할 사람이 어디 있겠나. 그래서 이상한 판결, 사법살인 판결이 나왔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사법부가 외부 권력에 위협받는 상황인가. 그렇게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쉽게 말해 이제 법관들이 말 그대로 양심에 따라 판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이번 재판거래 등 사법농단은 외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스스로 법관의 양심을 판 것이다. 법관 스스로 양심을 팔아 우리 사법의 신뢰를 완전히 땅에 떨어뜨렸다. 제 발로 불신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없었다."
- 그렇게 큰 사건인데도 정국이 너무 조용하다고 평가했다.
"이유를 나도 잘 모르겠다. 특히 정치권이 조용한 것을 보면 참 의아하다. 물론 민주당 일각에서 국정조사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대세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진 않다. 사실 이 사건과 비교해 그 파급력이 훨씬 부족한 사건을 두고도 국정조사, 특검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나. 사태의 경중을 따지면 사법농단 사건이 10배, 100배 큰 사건인데 왜 이렇게 조용한지 이해할 수 없다. 정치권은 이 문제에 답을 줘야 한다."
- '사법부 독립'이라는 가치를 지켜야 하는 것과 이 문제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충돌하는 면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 행정부와 입법부도 적극 개입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수사와 재판에 대통령이나 국회가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법관의 독립을 해친다고 할 수 있다. 그걸 하자는 게 아니다. 지금 재판거래를 포함한 사법농단과 관련해 많은 사실이 드러나 있다. 그러나 진상규명도, 수사도 잘 안되고 있다. 그것에 대해서는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가 상황을 체크하고 필요하면 고발도 해야 한다. 법원의 사법행정 남용에 취할 수 있는 국회 본연의 기능이다. 국회가 매년 사법부를 상대로 국정감사도 하지 않나. 그런 권한을 행사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국회는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 대법관은 전부 사퇴해야"
- 7일 SNS에 글을 쓰고, 열흘 만에 전국 법학교수 성명이 나왔다. 그 과정은 어땠나.
"로스쿨과 법과대학 교수를 모두 합하면 약 1600명이더라. 그동안 법학교수들이 사회적 사안에 간간이 성명을 발표한 적은 있다. 대부분 학교 단위, 학회 단위, 그리고 민변 등 법률가 단체와 함께 발표한 것이더라. 이번엔 전국의 모든 법학교수에게 물어보자고 생각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전국의 모든 법학교수에게 연락을 취했고, 최종적으로 136명이 참여했다. 전체 10%에 조금 못 미치는 숫자지만, 참여 학교 수가 60개였으니 광범위하게 참여했다고 볼 수 있다. 굉장히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 검찰 수사와 법원의 협조, 관여된 인물들의 사퇴,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재판부 설치,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했다. 그런 조치가 이뤄진다면 이번 사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나.
"성명은 다수의 견해를 모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요구사항에 100% 동의할 수 없다. 제가 만약 혼자 성명을 발표했다면 요구사항이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최대한 많은 교수들의 동참을 호소하기 위해 의견을 종합했다."
- 요구사항에서 의견 차이가 있었나?
"요구사항에 보면 '사법농단과 재판거래에 관여한 대법관들은 모두 사퇴하라'고 나와 있는데, 나는 사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임명된 대법관들이 모두 사퇴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시절 임명된 대법관들은 모두 직간접적인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몇 개의 사건만 보더라도, 13대 0으로 전혀 소수의견이 없는 판결도 있었다. 대법원장 의사가 관철됐고 대법관들이 그것에 동조했다는 것이다. 또 상고법원 도입하겠다고 대법원에서 그렇게 요란을 떨었을 때 대법관 중 어느 누구도 이를 지적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물론 그들이 법률적으로 잘못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대법관들은 이미 두 차례 입장을 표명했듯 '나는 관여 안 했다, 임기 6년이 보장된 헌법기관이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하루도 쉬지 않고 심리하고 판결하는 곳이다. 이 상태로 대법원이 계속 운영된다면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 본인들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이 있더라도 사법농단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외관을 갖고 있는 상태니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그것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추라고 본다. 그렇게 사법부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국민들은 대법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인식할 것이다."
"대법원장, 사법 신뢰 회복 의지 있는지 의문"
- 김명수 대법원장이 다소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김 대법원장의 어려움을 이해한다. 과거 기준으로 보면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후보자가 되기 어려웠던 분이다. 따라서 고위법관들로부터 대법원장의 권위가 존중되는 분위기인지 의심스럽다. 과거 같으면 양승태 대법원장이 선문답식으로 말 한 마디만 해도 밑에서 살살 기지 않았겠나. 그런데 김 대법원장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인물도 아니다. 또 김 대법원장은 양승태의 과오를 알기 때문에 철저히 관여해선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 부분은 존중할 수 있다."
- 그렇다면 김 대법원장의 태도는 적절하다고 보는 건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잘 발휘되고 있는지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 사건의 경우 법원행정처가 즉시 경고하던지 검찰 요구대로 고발했다면 그렇게 증거인멸 상황으로까지는 안 갔을 것이다. 그게 사법행정 차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이지 구체적인 관여가 아니잖나.
또 대법원은 2015년 허위영수증을 만들어 법원장들에게 공보비 3억5000만원을 현금으로 나눠줬다. 이러한 불법적인 예산 사용 내역이 최근 공개됐는데 법원행정처는 당시 상황에선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그건 양승태 시절의 변명이다. 그런 변명을 들으려고 대법원장이 바뀌었을 때 박수 친 것 아니다. 김명수 대법원이라면 잘못했다 시인하고 책임자를 사법처리하겠다고 나왔어야 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장이 사법 신뢰를 회복할 의지가 있는지 국민들이 의문을 품는 것이다."
- 말씀대로 대법원장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하지 못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들이 있다.
"압수수색 영장 발부 문제도 그렇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들이 상식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영장법관을 구성하는 것 역시 사법행정의 영역이다. 신뢰받을 수 있는 영장재판부를 왜 조기에 못 만든 것인가. 재판 관여를 우려하겠지만 제가 보기엔 그건 대법원장의 사법행정 권한이다. 해당 법원장과 대법원장의 의지만 잘 결합하면 특별재판부에 준하는 재판부를 만들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국민의 사법불신을 최소화시킬 수 있다."
-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에 있었고 수석재판연구관을 지냈기 때문에 불공정하다는 여론이 많다.
"그러니 판사들을 충분히 이해시킬 수 있는 것 아니겠나. 특정인물을 지명하면 문제가 될 수 있으니 결격사유가 없는 법관들의 풀을 만들어서 무작위 추천한다고 하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재판이란 게 결과도 중요하지만, 형식이 매우 중요하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는 사람도 결국 승복하는 이유는 절차가 공정했기 때문이다."
"교수들, 보다 조직적인 움직임 있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