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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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음식 준비라는 중노동을 없앴다고 해서 남편의 집안이 매우 진보적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차례상 차리기는 여전히 남아있다. 시어머니도 차례만큼은 어쩌지 못하셨다. 네 시간 동안 진행되는 남자들의 친목 도모, 그들이 조상님께 절하고 큰 상에 모여 앉아 밥 먹는 동안 여자들이 좁은 부엌을 오고 가며 '서빙'을 하는 것이 내가 겪는 명절의 모습이다.
지난 설날에도 남녀 다 함께 세배를 주고받고 정겨운 덕담을 나누는 시간은 없었다. 남자들끼리 모여 차례를 지냈다. 여자들은 일꾼일 따름이었다. 이왕 지내는 차례, 여자도 절하도록 권하는 게 요즘 추세라는데 여자들은 부엌 문턱을 넘지 못한다.
차례가 끝나면 거실의 넓고 긴 상에 남자들만 모인다. 반찬과 국과 밥을 날라주고 서둘러 작은 방에서 배 곪으며 젓가락 빠는 아이들 밥을 푸려니 '밥이 되다', '국이 싱겁다', '간장을 가져오라'는 호통이 날아온다. 아이들 상에 놓을 반찬까지 모조리 큰 상으로 가버린 것도 속상한데 이 와중에 반찬 투정이라니.
크고 긴 상에 남자들이 넉넉히 자리 잡아 여유롭게 밥 먹는 동안 손녀들 열 명과 며느리 다섯은 작은 방에 차려진 좁은 4인용 밥상에 겹겹이 끼어 앉는다. 먹고 남은 반찬에 마지막으로 젓가락을 얹는 건 며느리들 몫. 형님들이 대접에 나물을 비벼 뚝딱 해치우는 동안 나는 꿋꿋이 소고기뭇국에 흰밥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면 며느리들은 남은 음식물을 치우고 설거지하고 티브이 보는 남자들에게 커피와 과일 후식을 내놓는다.
꼬박꼬박 참여하는 명절은 아니지만 명절 때마다 벌어지는 이런 풍경을 겪으면 속이 쓰리다. 여자들을 '후손'으로 쳐주지도 않고 부엌데기로 밀어둘 거라면 왜 부르나 싶다. 남자들만 반찬 가지고 모여서 자기들끼리 상 차리고 먹고 설거지하고 헤어지면 될 터인데, 왜 그걸 못하나. 형제들과의 친목조차 왜 아내들에게 의존하나. 차례상에 모인 이 남자들은 아내들이 차례와 제사에서 손을 놓으면 어찌 대응할지 궁금하다. 직접 할까. 아니면 해체할까.
단 하루도 견딜 수 없는 이유
그럼에도 남편은 '이런 시댁이 없다'며 나보고 복 받았다고, 감사하라며 으스대곤 했다. 왜 이런 처지에 내가 황송해야 할까. 일해준 나에게 남편이 고마워해야지.
나는 물론 시어머니에게 감사한다. 며느리 노릇을 덜 시켜주셔서, 나를 덜 부려먹어서 감사한 게 아니다. 맏며느리로 최전선에서 작은 것부터 바꾸려 하시기 때문에 같은 여성으로서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
하지만 시가로 가는 길은 불편하다. 나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양이 적다 해도, 며느리 역할을 사사건건 강요받지 않는다고 해도, 명절과 차례에 담긴 모습 하나하나에 속이 편하지 않다.
이만큼에 감사하며 입 꾹 다물고, 내 처지는 그래도 낫다고 안도하면서 불편함을 외면해야 할까. 조선 시대로 '타임슬립' 해서 차례상을 차릴 때마다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차오르던 차, 책에서 이 문단을 발견했다.
"'명절 하루 일하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속 좁게 구는 거야?'처럼 멍청한 소리도 없다. 그날 하루 우리는 364일 겪어온 차별과 착취를 어머님과 아버님과 서방님과 아가씨들 앞에서 19세기 버전으로 응축해 겪으며 벗어날 수 없는 가혹한 여성의 운명에 몸서리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노동의 강도가 아니다. 아무리 궁리해도 도무지 찾아지지 않는 노동의 합목적성이 비극의 원인이다. " - 박선영, '미래에서 온 며느리',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364일을 차별 없이 산다 해도 단 하루 혹은 이틀 동안 사회와 시대에 놓인 여성의 위치를 집약해서 확인한다. 남자가 집을 해왔다고?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지하니 해야 한다고?
시어머니는 현재 실질적 생계부양자이며 시아버지는 시어머니에게 의탁한다. 자리에 모인 며느리들 그 누구도 시가로부터 집을 받지 않았으며 '가장'인 여자도 있다. 행여 뭔가 받았다 해도 그 대가로 목적에 맞지 않는 일을 해야 한다면 그건 노예가 아닌가.
대가족이 모인 공적인 자리에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성씨 다른 조상을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상을 차리고 그릇을 씻고 구석에 앉아 쭈그려 남은 밥을 먹는다는 건, 단 하루 이틀이라고 넘어가기엔 너무도 상징적이다.
조용하고 은밀하게, 균열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