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성들이 남들이 뭐라든 '맘껏' 꾸미고 '당당하게' 행동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 단, 타인의 평가와 시선 때문에 불편함까지 감수하는 꾸밈은 지양한다
unsplash
왕년에 코르셋을 입은 그녀들은 스스로도 '잘록해진' 허리가 예뻐서 입지 않았을까? 아니면 '잘록한' 허리를 미의 기준으로 삼은 사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꽉 끼는 코르셋 때문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어째서 그녀들은 완벽한 몸매를 맹목적으로 추구했을까? 몸의 아름다움을 몸의 편안함보다 우선시하는 모순된 흐름을 도대체 어떻게 봐야 할까.
남성은 허리 위로 빗질만 잘 해도 잘 꾸민 남성이 된다. 불편한 하이힐과 치마를 껴입지 않아도, 멋부린 옷차림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은 다르다. 얼굴, 가슴, 다리, 손톱, 제모... 심지어 소음순 축소 수술까지 등장할 정도니. 외적인 아름다움은 몸의 불편함마저 침묵하도록 강요한다.
나는 왜 꾸미기 시작했을까. 먼저 화장은 내 얼굴의 단점을 가려주었다. 사람들은 '예쁘다'며 칭찬했고 나는 뿌듯했다. 찰랑찰랑 긴 머리는 여성스럽다 했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는 밋밋한 모습을 밝혀줬다.
멍청해 보인다는 안경을 벗고 컬러렌즈를 끼니 훨씬 보기 좋다고 했다. 늘 바지만 입던 내가 짧은 치마를 입으니 '이제야 여자 됐네'라며 태도를 달리 했다. 잘 꾸미고 다니니 사람들의 대우와 말도 달라졌다. 스스로 보기 좋은 모습은 타인도 좋아했다.
꾸며진 나와 있는 그대로의 나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안 꾸민 날은 마스크와 모자를 써야만 타인을 만날 수 있었다. 화장을 못해서 단점이 부각된 얼굴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편하게 입으면 안 꾸미고 다닌다고, 가볍게 화장하면 꾸밀 줄 모른다는 소릴 들었다.
친한 친구는 오전 강의까지 결석하며 '오늘 너무 못생겨서 나가기 싫어'란 자괴감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늘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사적영역이었다.
짧은 치마를 입는 날은 강의 시간에도 수시로 치마를 신경 써야 했다. 모든 행동을 조심, 또는 불안하게 움직여야 했다. 진한 눈 화장을 하면 혹여 번질라 거울에 잡혀 있었다. 높은 하이힐은 조금만 멀리 걸어도 퉁퉁 부었고 뛸라치면 발이 아팠다. 렌즈로 빨개진 눈은 아팠고 늘 건조했다. 긴 머리는 자꾸만 흘러내려 걸리적거렸다. '잘 꾸민' 하루는 불편함 투성이었다.
나는 왜 불편함을 스스로 껴안았을까. 그냥 "예뻐 보이니까"였다. 건강보다, 시간보다, 내 몸의 편안함보다, '외모'가 분명 우선순위였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무렇지도 않게 긴 시간을 내 외모를 꾸미는 데 투자했다.
계절마다 걸맞은 화장품들을 구매하는 데 돈을 썼다. 아무리 불편하게 느껴도 나의 여성성을 돋보이게 하는 옷차림과 신발을 선택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 들면 금세 우울함과 짜증에 빠졌다. 끝나지 않는 수레바퀴였다.
나만의 '탈코르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