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전 열사1988.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 시절 투쟁을 이끄는 박래전
민중해방열사 박래전기념사업회 제공
동생을 마지막 만난 건 30년 전의 5월 23일이었습니다. 사월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었습니다. 동생은 숭실대학교 인문대학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여러 학내외 시위로 인해서 비공개 수배 상태였습니다. 학교로 나오기만 하면 형사들에게 잡혀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학교에 은신해 있었습니다.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는 학교로 찾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가 시골집에 내려왔습니다.
산밭에서 부모님과 참외를 심고 있었는데 껑충한 키의 동생이 올라왔습니다. 부모님을 만나서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어머님을 끌어안고 얼굴을 부볐습니다. 평소의 동생 모습이었습니다. 동생은 어쩐 일인지 안산에 사는 형네도 들러서 하루 밤을 지내고 왔다고 했습니다. 형과 형수도 보고, 조카들도 다 보고 왔다고 했습니다. 비공개 수배 상태인지라 걱정이 되었습니다.
동생과 마지막 통화를 한 날은 6월 1일, 동생의 스물다섯 번째 생일날이었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원고를 쓰고 있을 때였습니다. 전화를 달라는 요청을 전해 듣고 학교로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이 내 생일이잖아. 잊었어, 형?" 저는 동생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얼버무리고 전화를 끊으면서 며칠 있다가 찾아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생일 다음날 동생은 유서를 썼습니다. "어머님, 아버님께" 남긴 유서에는 "6월 2일 불효자 막내 드림"이라고 썼고, "어두운 시대에 태어나 참 인간이고자 했던 작은 사람의 아들이 이땅의 모든 사람에게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유서와 "사랑하는 한반도의 백만 학도에게"란 제목의 유서에는 "광주민중항쟁 8년 6월 2일"이라고 썼습니다.
생일 뒤에 유서를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