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 전 통일부장관(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세종연구소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안홍기
30대인 김정은이 이런 '꿈'을 현실화할 수 있는 인물일까. 이 전 장관은 "김정은을 직접 만나본 이들에 따르면, 30대인 그와 나이차가 느껴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 전하면서 "김정은이 북한의 국가원수라는 점 때문에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젊은 사람의 치기 같은 게 없다는 것"이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다음은 이 전 장관과의 문답 전문.
- 지난달 26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은 진짜 정상국가로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평가를 했다고 한다. 이 전 장관은 꽤 오래 전부터 '북한이 정상국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해왔다. "처음 그런 얘기를 했을 때는 나보고 '비정상'이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다.(웃음) 그런데 김정은 이전의 북한의 통치 시스템 자체가 비정상적인 체제였다. 선군정치란 이름으로, 군대 중심으로 끌어가면서 당은 형해화됐고 내각엔 아주 부차적인 역할만 주어졌다. 그런데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다음 사회주의 원칙에 근접한 형태로 바꿔왔다. 당의 지도 시스템을 회복하고 내각이 실제로 경제를 전담할 수 있게 했다. 박봉주 내각 총리는 기차 한대를 갖고 전국을 돌면서 '현지료해'즉, 현장시찰을 하고 있다. 선군정치 때문에 군에 계급 인플레가 일어났는데 이것도 현실화시켰다. 집권 초기인 2012년부터 이런 작업을 해왔다.
부인을 동반하는 것도 정상국가라는 것과 함께 외국에 김정은 리더십을 안정감 있게 보이려는 것이다. 김일성이 60년대에 비동맹 외교를 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정상들이 북한에 올 때 부인을 데리고 오니까 김성애가 등장한 적이 있다. 1975년까지 나오다 중단했고, 김정일 시대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
"김영철의 '사죄'...북한연구 30년 동안 이런 직접적인 사과 표현은 처음"-김정은은 글로벌스탠다드를 강조해왔는데, 사실 남쪽과 국제사회는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렇다. 그는 끊임없이 글로벌스탠다드'를 강조했다. 대중 앞에 부인과 함께 나타나는 거라든가, 일반적인 경제정책도, 외부와의 경제관계를 통제하지 않고 확장하려 했다. 그가 끊임없이 '세계 발전 추세' '국제 표준화' 같은 걸 말했다. 이런 모든 것이 정상국가를 지향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핵실험을 결정하면서도 정치국 상무위원 5명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절차'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올해 1월 1일 신년사부터 지금까지 김정은이 한 일련의 행위와 말들을 우리가 생각하는 비정상적인 국가라는 틀이 아니라, 정상국가의 지도자라는 가상의 틀에 넣고 봐보자. 대담하다고 할 사안들도 있지만 대체로 그냥 보편적인 일들이다."
-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예술단 공연때 남측 기자들 취재 제한 문제에 대해 '사죄'라는 표현까지 하며 사과했다. 과거에 비하면 깜짝 놀랄 일 아닌가 "'기자 선생, 미안합니다' 이건 정상국가에서 하는 것 아닌가. 북한 연구를 30년 동안해왔고, 정부 정책담당자로도 4년 일해봤는데, 이런 직접적인 사과 표현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김정은에 대해 핵미사일 도발, 외삼촌 장성택 처형 등 호전적이고 맹동적인 그런 면만 봐왔다. 반면 정상국가를 향한 일련의 시도들과 리더십은 보지 않았다. 김일성 개인숭배가 극심했던 1978년에 김정일이 원래 2월 8일이었던 인민군 창건기념일을, 1932년에 김일성이 항일유격대를 만든 4월 25일로 바꿨다. 이걸 김정은이 다시 원위치한 것도 정상국가화 작업의 하나였다. 사실 북한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김정은밖에 더 있겠나. 이런 면을 보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런 변화가 '김정은의 180도 변신'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김정은이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 더 대담하게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 그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김정은이 2013년 3월에 내세운 '핵무력-경제 병진노선'을 '핵과 경제' 병진이 아니라 핵을 보유하기 위해 내세운 위선적인 용어, 그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변명이라고 생각해 온 경향이 있다. 그러나 김정은은 경제에 대해 신경을 많이 써왔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보면 김정은의 주요 행사를 한 날은 당연히 그게 1면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날은 거의 예외 없이 경제 얘기로 가득했다. 보통 6면을 내고 특별한 날엔 8면을 내는데, 작년만 해도 5면은 남조선 비난이고 6면은 미국 비난에 할애하던 것이 줄어들어서 지금은 5면까지도 거의 경제 얘기다.
경제에 대한 김정은의 관심은 굉장히 오래 전부터 대단했던 걸로 보인다. 2013년부터 경제개발구법을 제정해 경제특구와 경제개발구 22개를 지정하고,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는데, 제재 국면에서 외자유치가 어떻게 가능할까 황당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제재국면에서도 그런 걸 했다는 건 바보가 아닌 한 뭔가를 하려고 했던 것을 의미한다. 김정은이 2012년 4월에 처음 대중 앞에 나타났을 때 '다시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고 다짐했다. 핵무력과 경제 양쪽 모두에 주력했는데 우리는 이 핵무력쪽만 본 것이다.
북한은 대체로 하루 세끼를 다 먹고 있다고 한다. 과연 '경제압박에 따른 고통 때문에 대화로 나왔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북한은 요 몇 년 사이 곡물 수입이 없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입에 풀칠하는 기조는 만들어놨다는 얘기다.
그런데, 김정은의 목표가 과연 하루 세끼 먹는 북한, 입에 풀칠하는 수준일까? 김정은이 생각하는 북한 경제의 유토피아가 그 정도에 그친다면 지금 핵을 포기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을 것이다. 핵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김정은의 목표는 그 정도가 아니다. 그야말로 고도성장이다. 중국, 베트남보다 더한 고도성장 국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제재 때문에 1%, 2% 성장, 마이너스 성장정도지만, 제재가 풀리면 연 15% 성장하는 경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우리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김정은은 북미대화를 통해서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싶어 하는데, 그보다 더 진짜로 받고 싶은 것은 북한 경제의 도약이라고 본다."
- 김정은이 원하는 게 '입에 풀칠은 하는 수준'이 아니다?"김정은은 핵무력과 경제를 동시에 추구해왔고, 경제에도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고강도 경제 압박에도 나름 견뎌냈다고 본다. 하지만 핵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는 경제는 지금 수준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근근이 굶어죽지 않는 수준이지,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번에 핵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핵과 체제안전보장을 맞바꾸는 일이지만 그 속의 진정한 의도는 핵과 경제개발을 맞바꾸는 것에 있다고 본다.
북한은 고도성장에 최적화 돼 있다. 문맹률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고, 매우 근면하다. 기업인들 입장에서 보면, 현재로서는 조금 수준이 떨어지겠지만 비유하자면 노동조합이 없는 대한민국 노동력이 북한에 있는 셈이다. 백화점이나 섬유산업 쪽 관계자들은 북한이 갖고 있는 경공업 기술도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저개발 국가에서 찾기 힘든 IT 인력도 수만 명이 있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지리경제학적 위치도 좋아 물류기지로서의 장점도 크다."
"김정일, 굶어죽어도 '강성대국'-김정은, 강성국가 말하는 실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