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게르니카'2016, 감독 Koldo Serra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독일공군의 하인켈 폭격기는 수백 톤의 폭탄과 소이탄을 끊임없이 퍼부었고, 융커 전투기는 도망치는 민간인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기총소사를 가했다. 게르니카 폭격은 <더 타임스>의 기자 조지 스티어의 현장 보도로 그해 4월 28일 <더타임즈>와 <뉴욕타임즈>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영화 <게르니카>(2016년, 감독 콜도 세라)는 이 폭격의 참상을 실감 나게 표현한 작품이다.
2. 학살의 의도게르니카 학살은 극단의 시대를 상징한다. 무엇보다도, 게르니카 폭격은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었다. 스페인 프랑코의 요청으로 폭격을 가한 나치 공군은 게르니카를 전격전(Blitzkrieg)의 첫 전술적 시험무대로 삼아, 독일공군 최첨단 기종의 성능을 실험했다.
게르니카는 인구 5천 명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고, 그 어떤 군사적 공격대상도 없었다. 여러 가지 전쟁물자를 조달하는 마을 외곽의 군수공장 외에는 어떠한 군사시설도 없었다. 더욱이 이 공장은 공격을 받지도 않았다. 폭격의 동기는 오로지 적에 대한 위협뿐이었다.
게르니카 폭격은 군사 전술적이 아니라 공화파 지역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 민중의 저항 의지를 분쇄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민간인 사망은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아니라, 전술적 목표였다.
3. 스페인 내전과 학살
군부 반란으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1936-39)은 외형상 공화정부 진영과 국민/파시스트 진영(민족주의 진영) 간의 내전이지만, 사실 교회와 군대, 극우세력이 합법적 공화정부를 타도하려고 시도한 반란이었다. 동시에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이 불간섭협정이란 핑계로 공화정부 지원요청을 거부한 가운데,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소련과 코민테른이 공화정부와 함께 싸웠던 국제전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2차 세계대전의 축소판이라 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