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는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박정훈
- 미투 운동을 통해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이 알려진 것은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앞에서는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뒤에서는 어떻게 아무 죄책감도 없이 성폭력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지난 대선에서 여성들이 '성평등이 민주주의 완성이다'라고 말했다. 지금에 대한 '예언'이라고 생각한다. 80년대 진보진영의 가치에는 성평등이 빠져 있었다. 부차적인 것, 사소한 것, 특수한 것이라고 취급됐다. '페미니즘 넘어 휴머니즘' 이런 소리나 한다. 애초에 휴먼 비잉(Human-Being)에 여자가 없었으니까 페미니즘이 나온 거다. 한 번도 페미니스트 가치, 여성을 고려한 휴머니즘이 있던 적이 없다.
인권·민주주의·평등 이런 가치에서는 여성이 배제되어 왔으니, 말로는 거창하게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실제로는 (성평등이)무엇인지 모르는 거다. 결국 모든 보편적 가치라고 하는 것에 '젠더'라는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 아니겠나. 아무리 '진보 남자'도 '젊은 사람'도 그걸 모른다. 슬프지만 우리 남자들 수준이 이렇다는 걸 인정해야 될 것 같다.
- '남자들 수준'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남자들이 여자를, 약자를 대해 온 방식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변화함으로써 이전에 했던 행동이 본의 아니게 범죄행위가 되니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남성적인 조직 문화, 남성 위계 사회에서 당연한 것들이 뒤집어지는 혁명적 순간이라고 본다.
그동안 위계적이고 수직적인 문화 안에서 누군가의 위에 올라서야 '진정한 남성이다'라고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또 그런 식의 조직문화를 만들어, 권력 있는 자에게 순종하고 권력 없는 자에게 권력을 부리면서 남성성을 구축해왔다.
그 가운데 절대적 타자로서 여성이 자리 잡고 있다. 남성성을 구축하려면 '여성이 아닌 것', '게이가 아닌 것'이 중요하다. 사랑은 이성애만 해야 된다고 강요받고, 자신의 여성적인 면을 부인하면서 남성이 성장한다. 그런 남성성을 획득하지 못하면 찌질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페미니즘은 기존의 성별 고정관념 해체하고 견고한 남성성의 구성 방식을 깨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판타지에 갇혀있는 남성을 구제하는 '남성 해방' 학문이다. '네 생긴 대로 내 생긴 대로' 서로 존중하면서 평등하게 살자는 것이다."
- 여성의 성적 자기 결정권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한 것 같다. 'No Means No', 즉 여성의 거절을 정말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모든 공적 영역에서 누가 지배적인 성별인가. 남성이다. 사기업에서 의사결정권이 있는 자리에 여성은 거의 없다. 여성의 존재 자체가 없었다. 20년 전에 한 공대 교수님이 '자기가 만난 여자라고는 집에 있는 마누라와 딸, 술집 여자밖에 없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 그들은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 동료로서 여성의 존재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남성 집단에 여성이 한 명 들어오면 동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기회를 주지 않거나 여성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게 하나의 '문화'다. 내 경우에도 밥을 먹으러 간 자리에서 내가 말할 때마다 남자 교수가 일부러 소리를 지르더라. 심지어 선배 여자 교수들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입 닥쳐라' '계집애가' 이런 소리를 듣고, 자신에게 재떨이를 던지는 남자 교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무려 교수사회인데도. 물론 나는 같이 싸웠다. 그런데 같이 싸우면 '어딜 소리를 지르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여자' 취급하더라."
- 여성의 목소리를 낸다거나 거부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없다는 말씀인가"상상해 본 적도 없고 경험해본 적도 없을 거다. '여자가 어디 눈 똑바로 뜨고 이야기하느냐'는 식으로 생각하고 같은 교수한테도 '네가 낄 자리가 아니야'식으로 차별한다. 학생들한테는 또 어떻게 했겠나. 상상이 간다."
- 이번 안희정 전 지사 성폭행 사건처럼 '업무상 위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제압하고 때리고 협박해야만 '성폭행'이라고 여기는 경향도 강한 것 같다. 실제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서 무죄가 나오는 경우도 많았고."'위력'이라는 개념에 포괄적으로 '권력'도 포함되는데, 이것의 핵심은 '성별 권력 관계'다. 거기에 '계층' 등이 얹어지면 피해가 더 심각해지거나 경감될 수 있는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성별 권력 구조가 굉장히 크게 작동한다. 서구는 이미 성폭력 개념에서 핵심적인 게 '성차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인식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다."
"당신은 성차별에 찬성합니까?" 아니라고 답한 당신은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