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으로 '정상연애' '정상가족'이 강조되지만, 실제론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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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린 아이들이 매우 좋아한다는 한 유튜브 채널을 잠깐 보게 됐다. 아이를 데리고 나와 같이 만난 친구는 "이거 없으면 엄마들은 밥도 못 먹어" 했다. 예전에는 뽀로로를 틀어 주면 조용해졌지만, 요즘은 그 채널을 틀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채널은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글로벌 유아교육 브랜드'를 표방한다는 업체의 유튜브 채널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영상 중 하나는 '상어'를 의인화해 '상어 가족'을 노래로 소개하는 것이다.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나조차도 반복되는 가사와 멜로디가 흥겹고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가 귀엽다고 생각했다. 과연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영상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엄마 상어는 '예쁘고', 아빠 상어는 '힘이 세고', 할머니 상어는 '자상하고', 할아버지 상어는 '멋있다'니. 그것을 보는 아이들은 성별에 따라 어떤 캐릭터에 이입을 하게 될지, 그리고 어떤 삶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이라 여기게 될지, 또 어떤 삶이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 못박아 생각하게 될지 걱정이 됐던 것이다. 사실, 아이들은 뭐든 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이날 흘끗 보게 된 영상에도 공주님과 왕자님, 그리고 마녀가 등장했다. 여느 동화와 같은 내용이었다. 공주는 드레스를 입고, 머리카락을 돌돌 말고, 뾰족한 구두를 신었다. 물론 잘록한 허리를 가진 몸매다. 하얀 피부에 속눈썹이 한올 한올 바짝 올라간 눈이 커다랗고 입술은 빨갛다. 모든 공주는 한 명의 왕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생애 첫 연애를 한 후 결혼한다. 그 후는, 보여주지 않는다.
'정상 가족 이데올로기'의 덫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사회에서 태어난 우리 모두에겐 언젠가 반드시 '정상 연애'를 해야 한다는 미션이 주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연애는 낭만적이고 달콤한 것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좋은 것'으로 가르쳐진다. 어릴 때는 동화, 커서는 드라마, 영화, 소설, 예능, 사실상 모든 미디어는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연애하는 일을 매우 환상적이고 아름답고 멋진 일로 그린다. 하지만 연애만 하고 각자 갈 길 가서는 안 된다. 다음 미션은 결혼이다. 제대로 된 커플이라면 반드시 결혼에 골인해야 한다.
십대 초반쯤 생각도 없이 따라 부르던 가요가 있다. 당대 가장 잘생긴 남자 아이돌 그룹 중 하나가 뽀얀 조명을 받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것이 정말 로맨틱하다고 여긴 적도 있다. 노래는 이런 가사다.
"향긋한 모닝커피와 내 아침을 깨워주는 상큼한 입맞춤, 아직 달콤한 꿈에 흠뻑 취해서 '조금만 더' 그러겠지, 하얀 앞치마 입고 내 아침을 준비하는 너의 모습, 나의 삐뚤어진 넥타이까지도 모두 다 너의 몫일 거야."이런 결혼생활이 실제로 펼쳐지면 어떨까? 사람은 누구나 하루 7-8시간의 수면이 필요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현대인은 수면 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니 아침잠은 너무 소중하고 달콤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누군가가 침대에서 아침잠을 즐기는 동안 누군가는 '향긋한 모닝커피'를 끓여 놓고, 하얀 앞치마를 입고 아침을 준비해야 한다고? 그리고 알람시계 대신 '입맞춤'으로 잠을 깨워주고, 넥타이를 제대로 못 매면 그걸 고쳐주기까지 해야 한다고? 이것이 로맨틱한 결혼 생활의 대표적 이미지라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게 끝이 아니다. 티브이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줄곧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 좋은 한때를 보여주며 임신과 출산을 종용한다. 무수한 콘텐츠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은 분명 힘들지만, 일생을 걸고 해 볼 가치 있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한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더욱 문제적인 사실은, 이 '정상 가족'에서 해야 하는 역할은 태어날 때 부여 받은 성별에 따라 주어진다는 것이다.
막내와 나는 나이 터울이 많이 져서, 나는 갓 태어난 아이를 아주 가까이서 보며 육아에 동참해야 했다. 신생아는 빨갛고 쪼글쪼글하고 못생겼다. 머리카락도 별로 없다. 이 무렵의 아이는 어딜 봐도 성별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홍색 아기용품을 써야 하는 것을 시작으로 누군가는 '여자'로 길러진다. 또, 이 아기에게는 상어가족의 예쁜 엄마 상어와 자상한 할머니 상어, 그리고 무수한 동화의 아리따운 공주들이 역할 모델로서 주어진다. 이들에게 이때부터 벌써 각본은 주어져 있는 것이다.
현실은 동화도, 영화도, 드라마도, 소설도 아니다. 어른이 되면 그것들이 그려내는 세계는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에서 성공적이고 완벽한 결혼 생활을 해내는, 그러니까 완벽한 '정상 가족'을 이루고 있는 부부는 매우 드물다.
통계청에 따르면, 많은 부부들은 결혼으로서 인생의 해피엔딩을 맞지 못한다. 70년대 초 1만1600건 가량의 이혼이 이루어진 이후로, 이혼율은 2003년 들어 최고점(16만6600건)에 도달할 때까지 계속 가파르게 증가했다. 2016년에는 최고점의 3분의 2 수준인 10만7300건의 이혼이 있었지만, 2004년에서 2016년의 이혼율은 비슷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같은 시기 결혼 건수는 2003년 30만2500건, 2016년 28만1600건으로 기록된다. 즉, 결혼에 도전한 커플 수의 절반이 넘는 부부가 매해 결혼 생활 유지를 포기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 되면 이상하다. 모두가 결혼해야 하는 사회에서, 이렇게 많은 부부들이 결혼에 실패하고 있다니. 이건 뭔가 잘못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