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리는 시내버스. (자료 사진)
조정훈
인터넷이 서서히 보급되고 있던 1990년대 중반, 버스를 타려다가 기막힌 일을 겪었다. 줄 마지막에 서서 버스에 올라타려고 왼팔을 뻗는 순간, 갑자기 문이 닫히면서 차가 출발하는 것이다.
손목이 문틈에 끼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운전수는 가속기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팔을 당겨보았지만 빠지지 않았다. 나는 버스 속도에 맞춰 뛰면서 오른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엔진소음으로 인해 기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고, 버스 속도는 빨라지기만 했다.
그 상태로 30여m를 달려갔고, 속도가 붙으면서 심장 박동과 문을 두드리는 속도도 빨라졌다. 만일 앞에 주차된 차나 표지판 등의 장애물이 있었다면 나는 넘어진 채 끌려가고 있을 터였다.
필사적으로 힘을 다해 주먹으로 문을 몇 번 더 친 뒤에야 차가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나는 계단 위로 올라섰다. 기사 옆에 서서, 그를 노려보며 정신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크게 벌어진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거친 숨이 전력 질주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알기 어려웠다.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고발'이었다. 하지만 헐떡이며 기사를 힐끗 보니, 그의 눈이 내 입보다 더 크게 벌어져 있었다. 나만큼이나 그도 놀랐을 게 틀림없었다. 그는 정중히 사과했고, 나는 그에게 주의를 당부한 뒤 자리에 앉았다.
나는 지금도 내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건이 최근 일어난다면 사건은 결코 내 선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무명의 목격자가 인터넷에 글을 올리고, 기사와 승객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논란이 충분히 뜨거워지면 언론도 달라붙을 것이다.
혹자는 '못된 기사'를 욕하며 '신상'을 털지 모르고, 혹자는 '멍청한 승객'에 분노하며 '손보다 머리 먼저 밀어 넣었어야 했다'고 비난을 할지 모르겠다. 대중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영상 공개'를 요구할 테고, 내가 공개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뭔가 구린 게 있어서 저런다'고 난리를 칠 수도 있다. "그 '학생충'이 삐삐에 정신이 팔려 제때 못 탄 게 틀림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나올까?
뉴스보다 먼저 반응하는 독자들